중대처벌법 첫날 "모두가 불안불안"...1호 안되려고 미리 휴무

처벌법의 현실적 적용 가능하도록 디테일한 법 손질 있어야 

 

한국재난안전뉴스 이계홍 논설고문 |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첫날인 27일 건설 현장은 작은 안전사고라도 날까봐 바짝 긴장한 분위기다. 중대재해처벌법 대상 1호가 되지 않기 위해 주요 건설사들이 휴무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설 명절과 광주 화정동 주상복합 아파트 붕괴 여파도 있지만, 어떻게든 ‘중대재해처벌법 1호’만은 피하자는 인식이 확산된 결과로 보인다. 

 

설 명절이 끼긴 했지만, 이렇게 공사를 중단한다는 것은 공기를 맞춰야 하는 건설사 특성상 좀체 볼 수 없는 현상이다. 대개 명절 연휴기간에도 공사를 하기 바빴는데, 올해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기점으로 쉬겠다는 기업들이 많다고 한 건설사 현장감독은 전한다.

 

​공기 지연은 공사비 증가로 연결되고, 따라서 공사기간을 줄이는데 혈안인 건설사들이 이처럼 ‘공사 중단’을 선언한 것은 ‘중대재해처벌법 1호 기업’이라는 불명예를 피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27일부터 휴무에 들어간 건설사는 현대건설. 삼성물산, 대우건설, DL이앤씨 등 10여개 국내 굴지의 건설회사들이다.  

 

현대건설은 27일을 ‘환경의 날’로 정하고, 전국 현장의 공사를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삼성물산은 이날 전국 모든 건설현장의 자체 안전점검을 실시한 후 설 연휴가 끝나는 2월 2일까지 작업을 일괄 중단하기로 했다. 대우건설은 건설 현장의 설 연휴 시작 시점을 27일로 앞당겼다. 설 연휴 이후에도 현장소장의 판단에 따라 다음달 4일까지 휴무를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DL이앤씨는 27일 대형 공사 및 주관사를 맡고 있는 현장을 대상으로 안전 워크숍을 실시하고 점검에 돌입한 이후 28일부터 다음달 3일까지 전국 모든 현장 공사를 중단하기로 했다. 중견 건설사들도 대형 건설사들처럼 설 연휴 기간에 공사를 중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사업주 및 경영책임자는 ▲중앙행정기관·지방자치단체가 관계 법령에 따라 개선 시정 등을 명한 사항의 이행 ▲재해 예방에 필요한 안전보건 관리체계 구축·이행 ▲재해 발생 시 재해방지 대책의 수립·이행 ▲안전·보건 관계 법령상 의무 이행에 필요한 관리상 조치 등 크게 4가지 의무를 준수하도록 되어있다. 

 

공사 현장에서 사망 사고가 발생하면 경영책임자에게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50인 이상 사업장에는 이 처벌법이 27일부터 적용되고, 50인 미만 사업장은 2024년부터 적용된다. 그러나 중견 중소 기업들은 근로자 사망사고가 발생하면 회사 문을 닫을 각오를 해야 할 정도로 과도하다고 볼멘 소리를 하고 있다.  

 

업계는 처벌법 규정이 추상적이고 모호하다는 점을 들고 있다. 행정기관의 고무줄 잣대가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 ‘재해 예방에 필요한 안전보건 관리체계 구축 이행’이라고 했는데, 그 기준이 어디까지인가를 알 수 없다. 공사 현장일수록 구체적으로 규정을 적용해도 시각과 관점의 차이에 따라 다툼의 소지가 있고, 이해 상충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중앙행정기관·지방자치단체가 관계 법령에 따라 개선 시정 등을 명한 사항을 이행’해야 한다는 규정도 마찬가지다. 중앙 행정기관과 지방자치단체가 사고를 보는 관점이 다를 수 있고, 개선 시정 등을 명한 사항의 이행도 어느 선까지인지 모호하다. 

 

‘안전 보건 관계 법령상 의무 이행에 필요한 관리상 조치’ 등에서도 일선 현장에서 까다로운 처벌법 조항을 숙지한 작업반은 많지 않다. 처벌법을 적용하려면 보다 구체적이고, 압축적이며, 현장중심적이어야 한다. 규정이 모호하면 해석상의 착오로 시비만 불러올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근래 공사 현장엔 안전 시설 설치가 부쩍 늘어났다고 한다. 경기도 A건설 아파트 공사장에서는 몇 걸음 가지 않아서 기둥과 벽 등에 설치된 CCTV가 쉴새없이 작동한다. 건설사 측은 법 시행을 앞두고 타워크레인과 고층부, 지하층 등 곳곳에 30대가 넘는 카메라를 설치했다. 그렇다고 사각지대가 없는 것이 아니다. 공사 현장일수록 모퉁이가 많고, 증마다 사각지대가 있다. 

 

안전관리자는 현장사무실에서 카메라를 통해 수백명 노동자의 근로 현장을 지켜보는데, 하루종일 들여다보면 눈알이 빠질 지경이다. 그러면 안전사고를 놓칠 수 있다. 안전모 착용이나 안전고리 결합 등 개인 장구류 착용 여부 등을 살피는 것이지만, 근로자의 감정, 정서, 기분까지 살필 수는 없다. 사고는 장구류 미착용에서도 나오지만 그날의 컨디션이 크게 좌우하는 것이 공사장 사고의 중요 요인이다. 

 

공사 현장엔 외국인 노동자가 적지 않다. 안전관리 모니터링은 외국어 가능자가 맡아야 하는데 그럴 정도까지는 가지 못한다. 물샐 틈없이 안전사고 예방에 신경을 써야 하는데 처벌법 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이 이런 데서도 찾아진다. 

 

공사장 곳곳을 직접 발로 뛰는 안전순찰원 숫자도 수십명 늘어난 곳도 있다. 콘크리트 타설 등 위험 작업장을 중심으로 관리를 하지만 전문가가 아닌 이상 간섭하다 보면 공사 지연 등 시비가 붙을 수 있다.

 

어느 공사장에는 벽면에는 군데군데 QR 코드가 붙어있다. QR 코드는 누구든 현장의 위험요소를 발견하면 사진으로 찍어 QR 코드에 올리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그 바쁜 와중에 사진을 찍어 올리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한 관계자는 "QR 코드를 통해 작업자와 안전관리자 간의 커뮤니케이션을 강화해 현장의 작은 문제까지 해결하려고 하지만, 실효를 거두기는 어렵다“고 했다. 발상은 좋으나 형식적이라는 것.  

 

화재 방지를 위해 대피로를 따라 반짝반짝 빛나는 대피 유도선 설치도 의무화되었다. 건설 관계자는 "과거에는 건설 현장에서 안전관리비를 많이 쓰면 방만한 운영이라는 시각이 존재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중대재해법 시행으로 안전관리비를 100% 이상 사용하려고 하는 분위기다“라면서 안전 관리를 위해서라지만 ”이게 무슨 짓인지 모르겠다“고 혀를 내두르고 있다. 

처벌법이 잔뜩 겁을 주는 것이라면 실효를 거두기는 어렵다. 안전 재난사고가 많으니 이런 처벌법이 나온 것이겠지만, 처벌만으로 사고를 예방하겠다는 것은 너무 행정편의주의적이다.

 

자발적으로 기본적인 안전 수칙을 지키도록 끊임없이 계몽하고 지도하면 되는 것이지, 행정 당국이 처벌법을 만들어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면 되는 것인가 하는 의문도 든다. 사고는 처벌법이 막는 것이 아니다. 처벌법의 현실적 적용이 가능하도록 보다 디테일하게 법이 손질이 되어야 한다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동시에 법이 필요없을 정도로 안전의식 제고를 위한 철저한 교육이 선행되어야 한다. 공사 현장은 바로 '생명운동'이라는 인문학적 소양이 깊숙이 체화되도록 경영자, 관리자, 근로자가 한데 어우러져 생명사상을 지피는 활동공간으로 승화시켜 나가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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