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반복되는 폭우 人災... 또 기후재난 탓하나

한국재난안전뉴스 최종걸 편집인 | 개미와 쥐도 비와 지진이 감지되면 높은 곳으로 안전지대로 이동한다고 한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만 자연 재난으로부터 피할 온 갖 과학을 동원한 시설과 통신장비 등을 갖췄으면서도 매년 폭우, 태풍 등으로 죽어간다. 태풍과 폭우는 적어도 1년전, 한 달 전, 일주일 전, 하루 전 단위로 알 수 있는 시대이다. 17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에 따르면 전국에 쏟아진 폭우와 이에 따른 홍수 등 여파로 사망·실종자가 48명으로 늘어났다. 이날 오전 6시 기준 집계에 따르면 이번 집중호우로 인한 사망자는 세종 1명, 충북 16명(오송 13명), 충남 4명, 경북 19명 등 총 39명이다. 수해로 치면 12년 만에 최대 규모의 인명 피해라고 한다. 재난 시 희한하게도 재난을 대비하려는 재난안전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아서 대비를 못 한 국민이 겪는 사망과 실종이다.

 

기후변화라고 재난에 따른 재해라고 얼버무리기에는 피해 규모가 크다. 거기에 사람이 끼어 있기 때문이다. 재난 시 이를 전파하고 재해가 예견되는 현장에 사람을 소개하고 차단해야 할 소위 공권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신 공무원을 포함한 공권력은 갑자기 벌어진 일이라 “어쩔 수 없었다”는 말로 대신했다. 충청북도는 오송 궁평 지하차도 수몰 참사에 대해 “통제가 가능한 상황이 아니었다”고 했다. 충북도 관계자는 “사고 당일 오전 8시35분에 한 주민이 지하차도를 지나간 것을 확인했다.”며 “강둑이 터진 뒤 도로로 유입된 강물이 불과 2~3분 만에 지하차도를 침수시키는 바람에 사고를 막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쏟아지는 보도에 따르면 이 참사 4시간 전 금강홍수통제소에서는 15일 새벽 4시10분 미호강 미호천교 지점의 홍수주의보를 홍수경보로 변경해 발령하며 주의를 당부했다. 이어 사고 2시간 전인 아침 6시31분에는 관할 구청인 청주시 흥덕구청에 교통통제와 주민 대피의 필요성 등을 통보했다. 흥덕구청은 청주시에도 이 내용을 전했지만, 교통통제는 이뤄지지 않았다. 충북도도 범람 위험이 크지 않다고 보고 교통통제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서울 강남과 사당지역 등 침수 사태 후 “AI 홍수 예보 등 스마트 기술을 기반으로 한 물 재해 예보·대응 체계를 구현하겠다”고 했다. 아직 구축이 안 돼서인지 말로만 구축이고 현장에는 공권력이 투입되지 않아서인지 지금부터 규명해야 할 차례이다.

 

인재로 추정되는 청주 오송읍의 궁평 지하차도 앞뒤 도로를 달리는 차량을 차단하지 않아 발생한 수몰 차량으로 현재 13명이 숨졌기 때문이다. 사고가 난 지하차도는 제방이 붕괴한 미호강과 불과 200여m 떨어진 곳이고 제방 붕괴로 쏟아진 6만t 정도의 흙탕물이 순식간에 들이닥치면서 침수됐다. 인근 논과 밭보다 낮은 지대의 지하차도였고 폭우를 대비해 설치된 배수펌프인 양수기는 작동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통제받지 않은 차량은 지하도로 430여미터를 달리다가 수몰됐다. 미호천은 지난해 정부가 홍수 취약 하천으로 지정했던 곳으로, 홍수경보가 내려진 상태였지만 제방 관리와 도로 통제가 되지 않았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속수무책이었고 어쩔 수가 없었다고 들리는 저 변명을 믿기가 어렵게 됐다.

 

재난을 예방하기 위해 거미줄처럼 체계화된 그 많은 재난안전통신망 등 국가재난 안전 시스템은 왜 재난 시에는 작동이 불능인지 알 수 없다. 북한이 지난 5월 31일 오전 6시 29분 군사 정찰위성을 발사한 이후 위성 방향이 서울이 아닌데도 당시 서울시가 “대피할 준비를 하라”는 경계경보를 발령했고, 약 22분 뒤 행정안전부가 “서울시가 발령한 경계경보는 오발령”이라고 정정하는 혼란을 질타하자 정부와 여당은 "시민 안전에는 과잉 대응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했다. 이번에는 금강홍수통제소가 사전에 홍수경보를 재난메뉴얼대로 관련 기관에 알려줬는데도 깔아뭉개고 현장도 찾지 않았다.

 

이런 상황이라 윤석열 대통령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의 참석차 들렀던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 전쟁터에 가서도 상황을 바꿀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윤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터를 찾아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생즉사(生則死) 사즉생(死則生)'의 정신으로 우리가 강력히 연대해 함께 싸워나간다면 분명 우리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켜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말은 재난 현장을 찾아 수고하는 국민에게 해야 할 소리라고 본다. 이번 폭우로 국가의 손길이 미치지 못해 숨진 이들에게 살아남은 우리가 이들을 구하기 위해 생즉사 사즉생이었다면 충분히 구할 수 있었다고 다짐했어야할 말이었다. “어쩔 수가 없었다”, “가도 상황이 바뀔 일이 아니었다”라는 말은 국민에게 공허하게 들릴 뿐이다. 이제 기후재난은 일상이다. 국민의 눈높이는 과거와 다르다. 안전을 높일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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