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법 시행 100일, 영세기업에 정부 안전설비투자 지원해야

50인 미만 사업장 사망자 수 전체 사망자의 57.7% 

 

한국재난안전뉴스 이계홍 논설고문 | 우리나라는 산업재해 사망률 세계 1위, 자살율 1위, 노인자살율 1위를 수년래 기록하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민주화되고, 경제적으로는 산업화되어 세계 10대 강국으로 발돋움했지만 국민의 삶은 여전히 팍팍하다. 이런 우울한 사실은 자살 통계에서 보여주고 있다. 

 

산업재해 사망률을 줄이고자 금년 1월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을 시행했다. 근로현장 감독관에게만 처벌하는 수준이 아니라 회사의 책임자까지 책임을 묻는 법의 시행이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100일(5월 6일)을 맞은 현재 상시 노동자 50인 이상의 기업에만 이 법이 적용되고 있으나 미적용 기업에서 주로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받지 않는 50인 미만 사업장의 사고가 줄지 않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산업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 사고의 절반 이상이 중대재해처벌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50인 미만 사업장의 사고인 것으로 나타났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5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조사한 올해 1분기 ‘재해조사 대상 사망사고' 현황을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일터에서 사고로 죽은 노동자는 157명이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명 줄어들었지만, 이중 56%에 달하는 88명이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받지 않는 사업장에서 발생했다.

 

업종별로 보면 올해 1분기 제조업 사업장에서 총 51명이 사망한 가운데, 이들 중 22명은 50인 미만과 5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 사망자였다. 제조업 사업장 사망자의 10명 중 4명(43.1%)이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에서 사망한 것이다.

 

건설업에서는 올해 78명이 사망해 지난해 1분기 85명 대비 사망자가 7명(8.2%) 줄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시행된 이후 건설업 관리감독을 강화한 결과로 볼 수 있지만 건설업 사망자 가운데 상당수가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받지 않는 사업장에서 나왔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건설업 사망자 중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되지 않는 50인 미만 사업장의 사망자 수는 45명으로 전체 사망자의 57.7%를 차지했다. 

 

1분기 사망자를 유형별로 살펴보면 안전수칙 준수로 예방이 가능한 '재래형 사고'가 여전히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즉, '끼임'16명(31.4%)과 '떨어짐' 7명(13.7%) 등 재래형 사고 비중이 45.1%로 높았고 '부딪힘' 5명(31.4%) '깔림·뒤집힘' 5명(9.8%) 등을 포함하면 86.3%에 달했다. '화재·폭발' 사고로는 8명(15.7%)이 사망했다.

 

산업재해 사각지대는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받지 않는 소기업에서 많이 발생한다. 그 이유로는 기본적인 안전보건조치 의무 위반으로 인한 죽음이다. 안전보건 관리체계가 실질적으로 작동되지 않은 데서 온 희생인 것이다. 영세 업체일수록 인력·예산 등 지원이 미비해서 생긴 현상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들 업체에 근무하는 노동자일수록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이해도가 낮고, 안전사고에 대한 대비도 소홀히한 측면도 있다. 생명존중 사상이 그만큼 절박하지 않아는 인생관에도 유래한다고도 볼 수 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최근 50인 이상 300인 미만의 전국 중소제조업체 504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100일 실태'에 관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중대재해처벌법의 의무사항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답한 곳은 50.6%에 불과했다. '일부 모르고 있다'는 응답이 48.0%, '거의 모르고 있다'는 답변은 1.4%였다. 규모가 보다 더 작은 종사자 수 50∼99인 규모 기업의 경우 60.4%가 중대재해처벌법의 의무사항을 잘 모르고 있다고 답했다. 

 

법을 준수하지 못하는 이유로는 안전보건 전문인력 부족(55.4%·복수응답), 준비 기간 부족'(53.1%), 예산 부족(40.7%), 의무 이해가 어려움(23.7%) 등이 꼽혔다. 자격증을 보유한 안전보건 전문인력이 있다는 기업은 31.9%에 불과했다. 

 

규모를 갖춘 대형 기업은 자체적으로 안전 교육과 인력, 예산 등을 투입한다. 그러나 영세 기업일수록 이런 데까지 신경을 쓸 여력이 없다. 따라서 산재사고 예방을 위해서는 정부의 안전설비 투자비용 등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해보인다. 뿐만아니라 생명존중은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교육도 사각지대에 더 투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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