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법 결국 수술대..로드맵에 재계 "일부 공감"..노조 "개악"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1년만에 손질키로
2026년까지 감축 로드맵 통해 연간 800명에서 500명대로 사망감소 목표
재계, 자율규제 공감 처벌강화 불만..노조, 근로자 책임전가..개악
향후 실행 과정에서 갈등 해소 및 혼란 봉합 주목

한국재난안전뉴스 이계홍 선임기자 | 정부가 올해 1월 산업현장에서의 안전사고 감축을 위해 시행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 대한 궤도 수정에 나선다. 당장 법 개정이 시행되는 것은 아니지만, 로드맵(향후 계획)을 통해 '처벌' 위주에서 '예방'과 자기규율' 방식으로 방향을 틀기로 했다. 

 

당장에 곧바로 바뀌는 것은 없지만, 방향성을 달리한 것으로, 재계는 공감 의사를 표현하면서도 일부 처벌 강화 등에 대한 반대입장을 내놓았고, 근로자측은 개악이라며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30일 고용노동부(장관 이정식)과 산업계에 따르면, 정부가 산업 현장에서 발생하는 중대재해를 줄이기 위해 규제와 처벌 중심의 정책 방향에서 자기규율을 통한 예방체계로 전환하기로 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 브리핑을 열고 "사후적인 규제와 처벌 중심에서 사전예방에 초점을 맞춰 2026년까지 실행을 위한 4대 전략과 14개 핵심 과제를 중점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의 핵심은 안전사고의 '위험성평가'가 인데, 위험성평가는 노사가 사업장의 위험 요인을 진단하고 자율적으로 개선 방안을 내놓는 제도로,  평소에는 기업 스스로 위험성평가를 통해 사고를 예방하고,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위험성 평가를 하고, 이에 대해 잘못이 있을 경우 그 책임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위험성평가를 기업 규모에 따라 단계적으로 의무화해 현재 OECD 38개국 중 34위인 1만 명당 사망자 비율을 OECD 평균까지 낮추겠다는 것인데,  작년의 경우 산업재해로 800명 정도가 숨지는 데, 이를 로드맵에 따라 2026년까지 500명대로 낮추겠다는 것이다. 

또 정부는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재해 원인을 담은 조사의견서를 공개해 다른 기업들의 위험성평가에 반영하도록 하고, 평가 역량이 부족한 중소기업을 위해 간편하게 평가할 수 있는 위험성평가 체크리스트를 만드는 등 다양한 평가 기법을 개발키로 햇다.

 

4대 전략, 14개 핵심 과제로 이뤄진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에 대해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최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등 처벌을 강화했어도 사고사망만인율(근로자 1만 명당 사망자 수)은 8년째 정체돼 있다"며 "이를 획기적으로 줄이기 위해서는 규제와 처벌보다는 스스로 규율하는 예방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4대 전략은 △위험성평가 중심의 자기규율 예방체계 확립 △중소기업 등 중대재해 취약분야 집중 지원·관리 △참여와 협력을 통한 안전의식 및 문화 확산 △산업안전 거버넌스 재정비다. 

로드맵에서 가장 강조하는 대안은 2025년까지 단계적으로 5인 이상 전 사업장에 의무화하는 '위험성평가'다. 회사마다 노사가 함께 자율적으로 '산재 위험성 체크 리스트'를 만들고 현장 근로자들이 숙지하도록 해 산재사망을 방지하자는 것이다. 이 장관은 "처벌을 회피하려고 서류 작업에 치중하다 보니 중대재해법 도입 이후 오히려 사망사고가 늘어나는 기현상이 발생했다"며 "선진국들이 일찍이 경험하고 증명해낸 자기규율 체계로 패러다임을 전환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한 평가는 사측과 근로자측에서 극명하게 엇갈리게 나오고 있다. 

 

경제계는 큰 방향성엔 공감하지만 외려 처벌과 감독 규제가 강화되는 부분이 문제라는 점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중대재해처법이 시행된 이후인 1~9월 중대재해 사망자가 510명으로 오히려 전년 대비 8명 늘어났다"며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법이며 적용 대상과 범위가 모호한데다 처벌 수준은 지나치게 높아 현장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관계자는 "이번 로드맵은 외려 상습 및 반복 사망사고에 대한 형사처벌 확대시행, 핵심 안전수칙 위반에 대한 무관용, 중대재해시 산재보험료 할증 등 처벌 강화 내용을 다수 포함시켰다"며 "대부분 선진국들이 자율관리제도로 운영 중인 위험성 평가를 의무화하고 처벌을 신설하는 규제강화 계획을 마련한 것에 대해서는 놀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한상공회의소 관계자는 그간 경제계가 호소해 온 중대재해처벌법의 불확실성과 과잉처벌 문제에 대한 개선 방안이 명확하게 제시되지 않았고, 외려 경제적 제재까지 검토한다는 건 처벌중심 감독이 그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반면, 근로자측은 가뜩이나 근로자 안전이 위협 받고 있는 상황에서 개악이라는 반응이다. 
전재희 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건설노조 노동안전실장은 "노동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개악적인 부분이 포함돼 있다"며 "현장에서 권한이 없는 노동자에게 산업재해의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중대재해 처벌법 시행 후 기소가 2건에 불과하고 집행과정이 실망스럽다고 느꼈는데 이런 부분은 반영되지 않았다"며 "작년 한해 건설현장에서 산재가 417건 발생했는데, 이는 구조적 모순 탓이며 개인에게 과실을 돌리고 책임을 지우는 건 사고통계랑 맞지 않다"고 말했다.

 

김광일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본부 본부장은 "안전수칙을 어긴 근로자에 대한 제재는 필요하지만 근로자에 어떤 권리나 의무도 부여 하지 않고 현장에서 직책만 주는 게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따라 향후 로드맵 실행과정에서 노사 양측의 갈등이 지속되는 가운데, 법 개정 과정에서 충돌도 발생할 수 있어 당분간 혼란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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