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재난안전뉴스 이계홍 기자 | 이스라엘 군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병원 폭격으로 최소 500명 이상의 희생자가 나오면서 레바논의 무장 정파 헤즈블라가 개입하겠다고 나섬으로써 이스라엘-하마스의 전쟁국면은 또다른 양상으로 치달을 전망이다. 헤즈블라가 참전하면 중동전쟁이 촉발될 수 있다는 우려다.
특히 바이든 미국대통령이 이스라엘을 방문하기로 한 바로 목전에서 병원에 입원한 환자 등 민간인 민간인 500명 희생됐다는 점에서 국제사회가 경악하고, 진상 규명과 공격을 멈추고 진상 규명을 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어 이스라엘-하마스간의 전쟁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18일 AP, AFP,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병원 폭격 소행 주체를 놓고 진실공방이 이뤄지고 있지만 이스라엘이 막강한 화력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국제 여론은 이스라엘에 따가운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이에따라 이슬람권의 분노·시위가 확산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의 이스라엘 방문도 퇴색되는 인상을 주고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간 전쟁 중 하마스가 통치하는 가자지구 중심부의 한 병원에서 17일(현지시간) 대규모 폭발로 민간인 수백명이 숨졌다. 누구의 소행이냐를 놓고 하마스와 이스라엘간에 책임 공방을 벌이는 가운데 진상 규명 결과에 따라 전쟁의 향방과 정세 변화가 불가피해 보인다.
민간인 수백 명이 숨진 상황에 국제사회는 충격에 빠졌다. 중동·이슬람권은 분노를 표출하며 이스라엘과 서방을 규탄하고 나섰으며 곳곳에서 항의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외교 해법 모색을 위해 예정됐던 요르단에서의 4자 회담이 취소된 가운데 이스라엘 방문길에 올랐다. 바이든 대통령의 이번 방문은 확전 위기를 맞은 이번 전쟁의 중대 분수령으로 꼽혔으나, 이번 폭발 대참사로 인해 출발부터 악재를 만나 '반쪽짜리'가 되면서 그 의미와 역할이 제한될 수밖에 없게 됐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날 오후 가자시티의 알아흘리 아랍병원이 폭격을 받아 수백명이 숨졌다. 하마스가 통치하는 가자지구 보건부는 이날 오후 수백명이 다치고 수백명의 희생자가 아직 건물 잔해 밑에 있다고 밝혔다. 폭발 이후 보건 당국자들은 사망자 수가 500명이라고 밝혔다. 희생자 대다수는 여성과 어린이, 피란민으로 알려졌다.
이 병원은 앞선 열흘간의 이스라엘 공습에 따른 부상자들과 가족들, 병원 마당으로 피란한 사람들로 붐비는 상황이었다고 AP 통신은 전했다. 외신을 통해 전해진 영상과 사진에는 불이 건물을 휩싸고 건물 밭 잔디밭에는 훼손된 시신이 다수 보인다. 그중 다수가 어린이들이었다.
미국 정보 당국은 이스라엘이 제공한 정보를 포함해 이번 폭발이 어떻게 발생했는지 파악하기 위한 정보를 분석 중이라고 미 CNN 방송이 전했다.
한편 책임 소재와 관계없이 민간인 수백 명이 폭격 속에 숨진 전쟁범죄 정황에 국제사회가 강력히 규탄하고 나섰다.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팔레스타인 민간인 수백명의 죽음이 경악스럽다. 이를 강력히 규탄한다"며 "병원과 의료진은 국제 인도주의법에 따라 보호 대상"이라고 강조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는 아랍에미리트(UAE)와 러시아의 요구로 18일 긴급회의를 소집해 가자지구 병원 참사를 논의할 예정이다.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성명에서 "가자지구 알아흘리 병원 폭발과 그것이 초래한 최악의 인명 피해에 분노하고, 깊은 슬픔을 느낀다"고 밝혔다.
샤를 미셸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도 가자지구의 민간인 시설을 공격 표적으로 삼는 것은 국제법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그간 하마스를 직접 지지하지 않고 일정 거리를 둬온 중동 이웃국들을 포함한 이슬람권은 폭격에 대한 가자지구 당국의 발표가 보도된 직후부터 분노를 표출하고 나섰다.
요르단 외무부는 병원 공습에 대해 "이스라엘이 이 심각한 사건에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고, 카타르 외무부는 이번 공격을 "잔인한 학살이자 무방비 상태 민간인에 대한 극악무도한 범죄"라고 비판했다.
이스라엘에 적대적인 이란의 지원을 받은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는 무슬림과 아랍인들에게 "강한 분노를 표현하기 위해" 즉시 거리와 광장으로 나가라고 촉구했다.실제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통치하는 요르단강 서안의 곳곳에서는 시위대와 팔레스타인 보안군 간의 충돌이 빚어졌다.
요르단 암만에서 분노한 시위대가 이스라엘 대사관 급습을 시도했고, 튀르키예와 튀니지 주재 서방 국가 대사관이나 이라크, 리비아 도심과 광장 등지에도 시위대가 몰려들고 있다. 아랍·이슬람권이 격앙된 만큼 확전 위기가 고조될 전망이다.
당장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요르단 방문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 수반, 이집트 대통령을 포함한 4자 정상회담 계획이 이례적으로 목전에서 취소됐다. 마무드 아바스 PA 수반이 먼저 공습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회동을 취소한다고 밝혔고 요르단도 "지금은 전쟁을 멈추는 것 외에는 어떤 말도 소용없다"며 정상회담 취소를 발표했다.
이스라엘의 공격 직후 아랍 국가들이 바이든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취소하는 현 상황이 사태의 심각성을 반영하면서도 중동 지역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약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진단도 나왔다.
영국 BBC 방송은 "아랍 국가들이 바이든 대통령과의 회담을 취소하는 것을 손쉽게 생각하고 있다"며 "몇 년 전만 해도 아랍국가들이 미국 대통령에게 이렇게 큰 거부를 할 용기가 없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그간 확전 가능성을 억제하기 위해 중동 이웃국들에 하마스 제거 당위성을 설득하는 데 공들여왔는데 이번 참사가 악재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스라엘이 곧 가자지구에 지상군을 투입할 것이라는 관측과 관련해서는 이번 참사로 이스라엘이 더 강하게 견제받을 가능성도 있다.
병원 폭발 참사로 레바논 무장조직 헤즈볼라가 직접 개입, 중동전쟁이 촉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점점 커지고 있다. 이란의 지원을 받는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에 대한 하마스의 기습 공격 이튿날인 지난 8일(현지시간) 이스라엘 북부를 공격하며 이미 제2의 전선을 형성했다.
양측은 가자지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공격을 주고받으며 전면전을 피해 왔다. 그러나 이번 병원 폭격으로 가자지구 전선이 격화할 것으로 우려되고 있으며, 이럴 경우 헤즈볼라를 비롯한 친이란 무장세력들 역시 공세의 수위를 높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헤즈볼라는 "18일(현지시간) 적에 대한 분노의 날로 삼자. 거리와 광장으로 즉시 가서 격렬한 분노를 표출하라"고 촉구했다. 레바논 베이루트 미국 대사관 앞에서는 시위대가 팔레스타인 국기를 들고 "이스라엘에 죽음을", "레바논에서 복수하자" 등의 구호를 외쳤다.
가자지구 병원 폭발 참사가 발생한 17일 이스라엘군과 교전으로 헤즈볼라 대원 5명이 숨졌다. 이스라엘군은 이스라엘 영토에 침투하려던 대원들을 사살했다고 밝혔다.
이날 사상자는 양측이 국경지대에서 충돌하기 시작한 이후 가장 많았다. 헤즈볼라는 지금까지 이스라엘과 교전으로 10명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했다. 이스라엘과 헤즈볼라의 충돌을 둘러싼 긴장감이 높아지자 미국 정부는 레바논과 관련한 경보 수위를 끌어올렸다.
미 국무부는 이날 레바논 여행경보를 기존 3단계 '여행 재고'에서 최고인 4단계 '여행 금지'로 상향 조정했다고 AFP 등 외신이 전했다.
국무부는 "이스라엘과 헤즈볼라를 비롯한 무장세력의 로켓, 미사일, 포격 공방과 관련한 예측할 수 없는 안보 상황 때문에 레바논 여행을 금지한다"고 밝혔다. 또 국무부는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의 미국대사관에 있는 비필수 직원과 가족들이 레바논을 잠정적으로 떠나는 것을 허용한다고 덧붙였다.
이스라엘과 헤즈볼라는 지난 열흘 동안 가자지구 사태 추이를 지켜보는 분위기였다. 이스라엘 국가안보 담당 부보좌관을 지낸 오르나 미즈라히는 헤즈볼라가 이스라엘군의 주의를 분산시키면서도 전면전은 피하려고 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그러나 가자지구가 파괴되고 팔레스타인인 사상자가 늘어날수록 헤즈볼라 지지자들 사이에서 대응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질 것이라고 NYT는 내다봤다. 전 레바논 보안 책임자인 이브라힘 장군은 하마스 지도부를 제거하려는 이스라엘의 노력과 수만 명의 팔레스타인 사망자가 헤즈볼라의 '레드라인'에 포함된다고 말했다.
헤즈볼라가 보유한 로켓 13만∼15만기 가운데 일부는 공군기지 등 이스라엘 군사시설에 대한 정밀타격 능력을 갖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문가들은 2006년 이후 이슬람국가(IS)와 싸우면서 헤즈볼라 대원들의 전투력이 크게 향상된 것으로 보고 있다.
피라스 막사드 중동연구소 선임연구원은 "헤즈볼라의 군사 장비와 능력은 하마스에 비해 압도적"이라며 레바논과 전면전은 이스라엘 역사상 유례없는 대규모 전쟁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하마스보다 전력이 월등한 헤즈볼라가 본격 참전할 경우 이란의 지원을 받는 이슬람 무장조직들이 도미노처럼 뛰어들어 중동전쟁으로 확전할 수 있다.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는 이스라엘을 향해 "팔레스타인인들을 겨눈 범죄와 관련해 심판받아야 한다"며 "우리는 가자지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