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재난안전뉴스 편집인 | 지난달 국민연금공단 수탁자책임위원회(수탁위)가 국내 20여개 기업에 주주가치 훼손 행위 등에 대한 기초조사 명목으로 자료를 요구하자 재계에서 거센 반발이 일고 있다. 주주대표소송을 위한 자료 확보가 아니냐는 우려이다. 국민연금 수탁위는 삼성그룹 계열사, 현대자동차, LG그룹 계열사, SK네트웍스, 롯데쇼핑과 롯데하이마트, GS건설, 대우건설, 현대제철 등에 주주대표소송 서한에서 “최근 10년 동안 경영진이 주주에 손해를 끼친 일이 있었다면 스스로 사실관계를 해명하라”고 기업들에게 요구했다는 것이다.
이에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상장회사협의회, 대한상공회의소, 한국무역협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코스닥협회 등 이들 경제단체들은 지난 10일 공동성명을 통해 "수탁위는 기금운용에 대해 전혀 책임지지 않기 때문에 수익률과 무관하게 정치·사회적 이해관계 및 여론에 따라 소 제기를 결정할 유인이 매우 높다"는 등의 거센 우려를 표명했다. 수탁위가 주주가치 훼손 행위 등에 대한 자료요구는 주주로서 당연한 요구이지만 투자는 받되 간섭은 싫다는 재계의 반발로 보인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기업 활동에 친환경(Environment), 사회적 책임 경영(Social), 지배구조 개선(Governance) 등 소위 ESG 투명경영을 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수탁위는 국민이 낸 연금을 운용하는 기금운용위원회를 보좌하는 기구로 투자기업에 대한 투명성을 감시하고 때에 따라 대표소송을 맡을 예정이라 기업 입장에서는 반가울 리 없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2월 24일 제10차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에서 대표소송 추진 관련, '수탁자책임 활동 지침' 개정안을 상정했다. 이 안에 따르면 수탁위가 금년부터 대표소송을 적극 추진한다는 안이다. 이 안은 다음 달 열리는 기금운용위원회에서 의결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를 앞두고 주요 투자기업에 자료를 요구하자 올 것이 왔구나 하는 분위기이다. 수탁위 서한을 받은 곳이 과거 공정위로부터 담합 등으로 과징금을 부과받은 삼성그룹과 LG그룹의 계열사, 현대자동차, SK네트웍스, 롯데쇼핑과 롯데하이마트, GS건설, 대우건설, 현대제철 등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물로만 봤던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코드쉽에 이어 수탁위를 통해 주주대표소송까지 나서 주주권 발동을 한층 더 강화하려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현실화됐기 때문이다. 국민연금도 이를 숨기지 않았다. “주주들에게 손실을 끼친 경영진에게 주주로서 책임을 묻는 주주대표 소송을 위한 기초조사”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눈먼 돈으로 여겼던 국민연금 지분이 이젠 소처럼 천천히 걸으면서 호랑이 눈을 부릅뜨는 호시우보하는 호랑이 역할에 재계가 화들짝 놀라는 모습이다.
주식회사는 주주가 경영진에게 경영을 위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때문에 투명경영과 성과경영에 대한 요구와 보상도 할 수 있다. 경영진이 주주에게 따지는 경우는 어느 나라에도 없다. 그런데도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자료요구에 재계가 거세게 반발하는 모습이다. 재계의 반발 목소리도 가지가지이다. “국민연금이 주주대표 소송을 남발한다면 기업경영이 위축돼 국가경제에 나쁜 영향을 줄 것”, “국민연금은 전문성도 떨어지고 정치적 독립성도 부족하다”, “기업경영에 대한 압박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등 원색적인 반발을 하고 있다.
ESG경영을 한다면서 주주들의 요구에 반대할 이유가 있는가. 투자자이자 주주로서 주주가치 제고를 요구하는 게 잘못된 일인지 묻고 싶다. 불투명한 의사결정이 낳은 기업흥망사는 지금진행중이다. 흔히들 최고경영자(CEO) 리스크가 기업 흥망사의 분수령이었을 만큼 지배구조와 투명성은 우리 기업들이 풀어야할 과제이다. 재계가 그동안 주주들을 거들떠보지도 않다가 국민연금이 주주대표소송에 나서려 하자 반발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주주를 섬기는 기업가라면 오히려 반겨야할 일이다. 세 사람중에 스승이 있다는 말도 있듯이 누군가 잘 못된 결정이라고 충고할 수 있는 이가 있다면 기업의 건전성에 보템이 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