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떠난 전공의 대표들 비대위원장 선출해 대응...병원 차질 불가피

병원 떠난 전공의 대표들 한자리에
"'빅5' 병원 소속 전공의들 전원 사직서 제출하고 진료 중단하겠다" 선언
병원들 신규 환자 받지 않고, 기존 환자는 퇴원 앞당기도록 유도

 

한국재난안전뉴스 이계홍 기자 | 전공의 대표들이 20일 모여 향후 대응방안을 논의했다.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반발해 사직서를 내고 근무 중단을 선언한 전공의 대표들은 이날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회관에서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긴급 임시대의원총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는 대한전공의협의회에는 박단 대전협 회장과 전국 수련병원 전공의 대표자들이 참석했다. 이들 중 대부분은 병원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이날부터 근무를 중단했다. 박 회장은 세브란스 응급의학과 전공의였지만, 전날 병원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박 회장은 "오늘 회의에서 비상대책위원장을 선출하고 향후 대응 방안을 논의할 것"이라면서 "'빅5' 병원 소속 전공의들은 전날 전원 사직서를 제출하고 이날 오전 6시 이후 진료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보건복지부가 주요 100개 수련병원을 점검한 결과 19일 오후 11시 기준 이들 병원 소속 전공의 55% 수준인 6415명이 사직서를 제출했다.

 

사직서 제출자의 25% 수준인 1630명은 근무지를 이탈했다. 각 병원은 이들이 낸 사직서를 수리하지는 않았다.

 

보건복지부는 이 가운데 728명에 대해 새로 업무개시명령을 발령했다. 기존에 명령을 내린 103명을 포함하면 지금까지 총 831명에게 업무개시명령이 발령됐다.

 

 

한편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으로 서울시내 대형병원 곳곳에서 '의료 파행'이 벌어지는 가운데 실제 일부 병원에선 진료 지연이 일어나고 있다. 병원측은 특수 처치 및 검사가 불가한 경우 진료가 어려울 수 있다며,  신규 입원환자는 받지 않고, 기존 환자는 퇴원을 앞당기도록 유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와 의료계에 따르면, 20일 오전 6시를 기해 각 병원 전공의가 근무를 중단하는 사례가 속출하면서 곳곳에서 수술과 입원이 연기되고, 퇴원은 앞당겨지는 혼란이 벌어지고 있다.

 

세브란스병원은 전공의 집단사직에 앞서 수술 일정을 조절했고, 과별 상황에 맞춰 추가 조정하고 있다. 안과 등은 사실상 정상적인 운영이 불가능하다고 보고, 외래 진료를 대폭 줄였다. 이미 환자들에게도 병원이 정상적으로 운영될 때 진료를 재예약해달라고 요청한 상태다.

 

세브란스병원 내부적으로는 전공의 이탈로 향후 수술 일정을 50% 정도 줄일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병원 관계자는 "전공의가 전부 빠졌을 때 기존 대비 50% 수술이 가능한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에 그보다 더 밑으로 내려가진 않을 것"이라며 "절반만 하겠다고 결정한 것은 아니고, 진료과별 인력 상황에 따라 할 수 있는 수술은 최대한 하려고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세브란스병원은 성모병원 등과 함께 근무지를 이탈한 전공의들이 상대적으로 많은 병원으로 꼽힌다.

 

강남세브란스병원은 이날 응급·중증 수술을 중심으로 진행하고, 당장 21일부터는 수술 일정을 '절반'으로 줄일 예정이다.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오는 26일 수술 예정이었다는 한 갑상선암 환자는 수술이 취소됐다는 소식에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암 수술 전부터 취소라니, 암 환자는 암을 키우라는 거냐"고 울분을 토했다.

 

서울아산병원, 서울성모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대병원 등 다른 '빅5' 병원도 환자의 중증도나 응급도를 고려해 입원과 수술 일정을 조절하고 있다.

 

각 병원은 수술이 연기·축소된 데 따라 신규 환자의 입원도 제한적으로 받고 있다. 일부 진료과는 환자들의 퇴원을 다소 당기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이에따라 환자들의 불안은 심해지고 있다.  지방에 거주하는 한 보호자는 "어머니가 최근 폐암 진단을 받아 서울시내 '빅5' 병원에서 수술 일정을 잡기 위한 검사를 앞두고 있었는데, 당장 검사도 못 받게 생겼다"며 걱정했다.

 

서울아산병원에서 만난 한 암 환자의 보호자는 퇴원 수속을 밟고 있다고 했다. 이 보호자는 "파업 때문에 정상적 진료가 힘들어 인근 다른 종합병원에 입원하고, 다음 달 다시 입원하라는 안내를 받았다"고 전했다.

 

암을 진단받아 수술을 잡아야 환자는 물론이고, 암 의심 소견을 받고 병원에 추가 검사를 예약한 환자들도 마찬가지다. 아직 검사가 남아있는 만큼 후순위로 밀릴 수 있다는 불안이 크다.

 

서울대병원 노조 등이 속한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는 이미 병원 현장이 '아수라장'이라고 전했다.

 

응급실, 수술실, 중환자실 등 생명과 직결된 곳에서 일하는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나면서 6개월간 수술을 기다린 환자들의 수술 예약이 취소된 사례도 나왔다고 한다.

 

의료연대는 "신규 입원환자를 받지 않고 환자의 퇴원 일정을 앞당기는 등 환자들의 입원을 제한하는 움직임도 있다"며 "서울 상급종합병원의 한 병동은 '재원 환자 0명'으로 병상을 비운 상태라고 한다"고 밝혔다.


전날 오후 6시 기준 접수된 34건 중 수술 취소는 25건, 진료 예약 취소는 4건, 진료 거절은 3건, 입원 지연은 2건이었다.

 

병원들은 전공의들의 빈 자리에 대체인력을 투입하면서 대응하고 있지만,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한계에 다다를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더욱이 24시간 운영되는 응급의료센터의 경우 전공의 업무공백을 교수들이 채우고 있어 벌써부터 피로도가 심각해지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보건복지부는 '의사 집단행동 피해신고·지원센터'를 통해 환자 불편 사례를 취합하며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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