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근로자 92만 3000명, 제대로 된 안전장치 없이 위험 업종 노출

고용 업체 영세성 면치 못하고, 대부분 고되고 어렵고 힘든 직종에 근무
언어 통하지 않아 사고 빈발....현장서 제대로 된 안전교육 못 받아
사고시 '우왕좌왕' 불가피...안전장치 마련 및 언어습득 위한 교육 절실

 

한국재난안전뉴스 이계홍 기자 | 우리나라에서 노동자로 취업한 외국인이 92만명이 넘어섰다. 이들은 대체로 3D업종(힘들고 혐오스런 업종)에 종사하고 있다. 내국인 기피업종의 빈 자리를 외국인 노동자들이 채우고 있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안전대책이 취약하다. 산재 사망사고 비중이 높다는 것으로 이를 증명한다. 이유는 이들을 고용한 업체가 영세성을 면치 못하고 있는데다 대부분 고되고 어렵고 힘든 직종에 근무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언어가 통하지 않아 사고 전달 체계가 미흡한 측면도 있고, 안전 교육에 대한 인식이 떨어진 측면도 있다. 따라서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안전장치 마련은 물론 언어습득을 위한 충분한 교육이 요구된다

 

26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외국인 취업자가 92만3000명을 넘어서며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이들의 상당수는 일용직이나 건설업·제조업 등 내국인이 기피하는 일자리를 채우고 있다.

 

외국인 노동인력은 빠른 속도로 늘고 있지만, 이들을 고용하는 사업장은 대부분 중소·영세 업체다 보니 외국인 근로자가 충분한 안전교육을 받지 못한 채 현장에 투입되는 경우가 많다.

 

24일 발생한 경기 화성 아리셀 공장 화재 사고 사망자 23명 중 18명이 외국인이었다는 점도 외국인 근로자들이 얼마나 '안전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는지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내국인 기피업종 '빈 자리' 외국인이 채워 

 

26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외국인 취업자는 사상 처음으로 90만명을 넘어선 92만3천명으로 집계됐다. 이렇게 들어온 외국인 근로자의 상당수가 내국인이 꺼리는 힘들고 위험한 업무에 투입되면서 외국인 근로자의 산업재해 사고 발생 건수도 덩달아 많아졌다.

 

고용노동부의 '2023년 유족급여 승인 기준 사고사망 현황'을 보면 지난해 외국인 산재 사고 사망자는 85명으로 전체(812명)의 10.5%를 차지했다. 업종별로 보면 외국인 산재사고 사망자 85명 중 64.7%(55명)가 건설업에서 발생했고, 제조업이 25.9%(22명)로 뒤를 이었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산업재해로 인한 외국인 근로자의 제조업 사망사고 실태분석 및 대응 방안에 관한 연구' 논문은 외국인 산재 사고 건수가 2017년 6070건에서 2021년 7739건으로 25.4% 증가했다고 밝혔다.

 

외국인 근로자의 산재 중 사고로 인한 사망(사망사고)은 2017∼2021년 총 504명이 발생했다. 매년 101명이 산재 사고로 목숨을 잃은 셈이다.업종별로는 건설업 47.8%(241명), 제조업 36.5%(184명), 서비스업 8.9%(45명), 농·임·어업 24명(4.8%), 운수·창고·통신업 1.2%(6명) 순이었다.

 

사업장 규모별로는 50인 미만에서 367명(72.8%), 137명(27.2%)의 사망자가 발생했다.불법 체류자 등 통계에 잡히지 않는 외국인 근로자를 포함하면 외국인의 산재 사고 및 사망 건수는 통계치보다 훨씬 더 많을 수 있다.

 

외국인 안전 제도는 갖췄지만, 현장에선 불안전지대

 

노동부는 지난 4월 30일 '2023년 유족급여 승인 기준 사고사망 현황 발표' 당시 산재 사고 사망자는 812명으로 전년 대비 62명 감소했고, 사고사망 만인율(임금근로자 1만명당 발생하는 사망자 수의 비율)은 0.39로 통계 작성 이후 최초로 0.3대에 진입했다고 평가했다.그러나 외국인 근로자는 오히려 전체 산재 사고에서 사망사고 비중이 커지면서 역행하는 모습을 보였다.이는 내국인이 기피하는 위험업종의 빈자리를 외국인이 채우고 있음을 방증한다.

 

외국인 근로자는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데다가, 이들을 채용하는 사업장이 주로 중소·영세업체인 탓에 외국인을 위한 안전조치나 외국어 안전교육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실정이다.

 

아리셀 공장 화재 사고로 목숨을 잃은 근로자 23명 중 18명도 외국인이었다. 산업안전보건법 제37조에서 외국인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주는 안전보건표지를 고용노동부 장관이 정하는 바에 따라 해당 외국인 근로자의 모국어로 작성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은 산업현장에서 자주 발생하는 용접작업 화재, 밀폐공간 질식 등 재해예방 교육 동영상을 16개국 언어로 번역해서 배포했다고 지난 23일 밝혔다.그러나 실제 현장에서의 효용성은 그다지 크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어에 서툰 외국인 근로자는 여전히 안전교육 내용을 제대로 숙지 못한 채 현장에 투입되는 경우가 많았고, 일용직 등 단기 근로자는 안전교육이 부실하게 진행되거나 아예 이뤄지지 않기도 했다.

 

아리셀 관계자 3명, 산업안전보건법 및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입건

 

일부 사업장은 안전교육을 근로계약서 작성 시 15분 정도 만에 끝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리셀 박순관 대표는 지난 25일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면서 "이들(근로자들)을 대상으로 한 안전교육이 정기적으로, 충분히 이뤄졌다"고 밝혔다. 동석한 회사 관계자는 "외국인 작업자가 처음 출근해도 잘 볼 수 있게 곳곳에 한국어, 영어, 중국어로 된 비상 대피 매뉴얼을 비치해놓고 비상 대피 지도도 그려놓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 화재 사고 이틀 전(22일)에도 유사한 사고가 있었던 것으로 나타나, 후속 조치와 교육이 적절히 이뤄졌는지 등은 추후 조사를 통해 밝혀질 전망이다.

 

노동당국은 26일 아리셀 공장 관계자 3명을 산업안전보건법 및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


기획·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