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공짜밥 아니었다...美IRA에 이어 반도체法 추가

한국재난안전뉴스 최종걸 편집인 | 지금도 울리는지 모르겠지만 60대 전후 세대들은 군대에서 점심 이후 나팔 소리를 듣고 오후 일과를 시작했다. 오후 일과를 시작하는 나팔 소리 리듬에 맞춰 “공짜 밥이 어딧냐 X뺑이 쳐봐라.”라고 자조적인 곡을 붙여 부르곤 했다. 사실 사병이 먹는 밥은 쥐꼬리만 한 월급에 추가된 기본급에 해당한다. 요즘 말로는 최저임금 속에 포함된 밥인 셈이다. 현금으로 안 주니 공짜 밥처럼 착각했을 뿐이었지만 나팔 소리를 듣는 사병들은 이내 알아차렸다. 국방의무를 해야 하는 군인에게 당연히 제공해야 할 밥이 공짜 밥처럼 여겨졌을 뿐이다. 공짜 밥으로 착각한 건 군대만이 아니었다.

 

미국이 자국의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겠다고 지난해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기습적으로 발동하면서 전기차 보조금을 미국산과 북미산에만 혜택을 몰아줬다. 한국과 중국 그리고 유럽(EU) 등 기타 국에서 생산하는 전기차는 해당 사항이 없었다. 그랬던 미국이 이번에는 '반도체 및 과학 법(반도체 법)' 세부 지침을 조만간 공개할 것이라고 한다. 미국 정부가 지난해 8월 공표한 반도체 지원법, 일명 ‘칩스법’ 이행에 필요한 세부 규정을 조만간 발표한다. 미국 반도체 법은 자국 반도체산업 육성을 위해 대규모 보조금 지원을 확대하는 것과 더불어 소위 단서 조항인 ‘가드레일’을 담고 있다. 미국 정부로부터 세제 혜택이나 보조금을 지원받은 기업은 향후 10년간 중국의 첨단 반도체 시설에 투자해서는 안 된다는 게 가드레일의 핵심이다.

 

이 법안이 공식 발표되면 이미 보조금을 받기 시작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다. 반도체 수출의 40% 시장을 포기하라는 거나 다름없다. 보조금이 공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 보조금에는 삼성과 SK가 미국내에 가동 중이거나 건설 중인 반도체 공장을 지원하는 게 아니라 거기서 생산된 제품은 중국에 수출하지 말라는 이면 내용이 숨겨져 있는 셈이었다. 공짜 밥에 서서히 죽는 독약을 넣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닌 듯하다. 초격차 기술로 경쟁해야 하는 시장에서 최대 수출시장에 10년간 수출을 할 수 없다면 사업 존망의 명운을 걸고 투자한 대가는 공염불로 끝날 수밖에 없다. 지금 그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니 믿기지 않는다. 보조금을 지급할 때 단서 조항이 있었겠지만, 그때는 없었고 지금 와서 추가 단서 조항을 내민다면 이건 뒷골목 수법에서나 쓰는 변칙으로밖에 볼 수 없다.

 

미국이 반도체 지원법을 미끼로 한국, 대만, 일본 등 반도체 기업들의 미국 국내 공장 신설 주문이 단순히 중국에 대항하기 위한 미국 국내 공급망 확보인 줄 알았더니 수출까지 봉쇄할 줄은 미처 못 알아본 것이다. 이미 삼성전자는 미국에 반도체와 파운드리 공장을 짓고 있고, SK하이닉스 역시 연구개발(R&D) 시설을 구축하는데 미국 반도체 법에 따라 세제지원을 받는다. 또 있다. 삼성전자는 낸드 생산량 40%, SK하이닉스 역시 D램 생산량 50% 수준을 중국에서 생산하고 있을 만큼 중국 공장 생산 비중이 크다. 공장 증설은 둘째치고 설비교체도 제한받는다면 마치 벼랑 끝자락에서 오도 가지도 못하는 형국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해 7월 27일 미국 백악관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과 화상 면담을 통해 미국 국내 반도체 등에 220억 달러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코로나로 격리 중이었던 바이든 대통령은 면담이 끝난 후 백악관을 떠나는 최 회장에게 두 손을 번쩍 들어 고맙다는 인사를 표시했다. 그로부터 추가 계산서를 내 밀은 셈이다. 투자해서 생산은 하되 미국이 지명한 국가에만 수출하라는 단서 조항이다. 아무리 빛나는 기술도 시장이 없으면 쓸모가 없다. 기술은 시장을 이길 수 없다.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시장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기술이 빛이 난다.

 

IRA에 당한 지 1년도 못 돼 이번에는 반도체 및 과학 법(반도체 법)에 제대로 걸려든 셈이다. 소위 가드레일이라는 단서 조항이다. 이 조항의 문턱을 넘지 못하면 삼성과 SK가 미국에 투자하기로 한 수백억 달러는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꼴 날 수가 있다. 우리나라 지난해 무역적자는 475억 달러다. 이어 올해 들어 지난 10일까지 177억 달러로 지난해 전체 무역적자의 37%를 이미 넘어서고 있다. 여기에는 반도체 수출 급감이 차지하고 있다. 전체 수출의 20%를 넘게 감당하고 있는 반도체 수출의 급감 여파이다. 이러니 국방에 이어 산업까지 미국 들러리 뒤 끝에 무역수지는 1년째 적자를 이어가고 있고 그 골은 점점 깊어지고 있다. 누구 탓을 해야 하나. 거칠어진 국제무역시장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생존술이 요구된다.

 

 

 


기획·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