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재닛 옐런 美재무장관까지 반도체 배터리 굴레 강요하나

한국재난안전뉴스 최종걸 편집인 |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이 이틀간의 일정으로 방한 한 첫날인 19일 오전 서울 강서구 마곡동 엘지(LG)사이언스파크를 방문해 반도체·배터리를 언급하며 ‘프렌드쇼어링’(우방국 간 공급망 구축)을 하자고 밝혔다. 미국 통상장관이 아닌 재무장관의 첫 방문지 치고는 이례적인 행보였다. 상식적으로 카운터 파트인 기획재정부를 방문하는 관례에서 벗어난 행보였기 때문이다. 엘지화학에서 한 발언도 통상장관이 해야 할 발언을 대신하는 듯 했다. 방한 첫날부터 방문지와 방문지 발언은 다음달까지 미국이 요구하고 있는 ‘칩4 동맹’에 참여를 요구하는 뉘앙스를 짙게 풍겼다. 미국이 반도체 시장의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의 추격을 막고 봉쇄하려는 자국 중심의 칩 동맹을 ‘프렌드쇼어링’으로 포장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시절에는 자국 기업을 본국으로 되돌아오게 하는 리쇼어링을 강하게 밀어부친 바 있었지만 이젠 전략을 바꿔 핵심 축을 담당하고 있는 주요국들끼리 묶는 동맹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발 고금리 정책으로 금융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자금이 이탈하는 바람에 올해 들어 300억달러에 이르는 외환보유고가 줄어든 상황에서 기대했던 한미 통화간 맞교환을 의미하는 통화스와프 동맹은 외교적 수사에 그친 반면 배터리 주요 생산기업인 엘지화학을 찾아 ‘칩4 동맹’에 이은 또 다른 배터리 동맹을 강요하는 수순을 밟은 듯하다. 칩4 동맹이라면 삼성전자와 에스케이(SK) 하이닉스를 찾았어야 했지만 전기차 배터리와 전지 소재 등을 개발하는 엘지화학을 방문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프렌드쇼어링은 경제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믿을 만한 무역 파트너 간 관계를 심화하고 공급망을 다양화하는 것”이라며 “동맹국·파트너와 함께하는 것이 경제 회복력을 강화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중국 같은 나라들이 핵심 원자재·기술·상품 분야에서 시장 지위를 이용해 우리 경제를 어지럽히고 지정학적 지렛대로 사용하는 걸 용납할 수 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재무장관이 할 소리는 아닌데도 우리의 주요 수출국인 중국을 대놓고 비난했다. 우리는 중국에 수출도 하지만 주요 소재 수입도 한다. 그 규모가 미국, 일본, 유럽연합(EU)을 합친 것보다 더 크다. 그 수출입의 주력 국가에 수출입하는 기업에 가서 대놓고 비난하는 처사가 동맹을 위하는 길인지 기업을 위하는 방문인지 묻고 싶다. 한마디로 잿뿌리는 행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엘지화학과 엘지에너지솔류션은 조 바이든 미국 정부 들어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발표한 바 있다. 때문에 이에 대한 감사 정도의 덕담이면 충분했을 것을 그 자리에서 중국을 비난할 이유는 없었다고 본다. 미국의 전기자동차 테슬라가 중국에 세계 최대 전기차 공장을 가동해서 중국과 전 세계 전기차 시장을 공략하고 있는지 모르는 듯 한 발언이다. 발언 내용을 보면 마치 테슬라 중국 공장에서 한 발언처럼 들리지만 분명히 방한 한 곳은 한국이고 엘지화학에서 였다. 한국에 동맹을 가장한 굴레를 요구했다.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자 SK그룹 최태원 회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중국은 좋든 싫든 상당히 큰 시장인 만큼 포기하는 것은 선택지가 아니다”라고 말해 최근 미국 측의 지나친 요구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자국기업인 테슬라는 마음대로 활개치는데도 통제하지 못하면서 한국 기업 수출입의 주요국인 중국만을 꼭찝어 관계를 끊으라는 강요성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5세대이동통신(5G) 주요 장비제조회사인 중국의 세계적인 기업인 화웨이 장비 사용 금지 강요에 이은 또 다른 압박이다.

 

동맹(同盟)의 사전적 의미는 둘 이상의 개인이나 단체, 또는 국가가 서로의 이익이나 목적을 위하여 동일하게 행동하기로 맹세하는 것을 말한다. 서로의 이익과 목적을 위해서 맺는다는 것이다. 동맹은 굴레가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는 생존을 위해 지난 1980년대 후반부터 동서진영의 틈바구니에서 벗어나기 위해 북방외교를 추진했고, 러시와 중국 등과도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올해로 30년을 맞는다. 그 덕분에 양측은 서로의 국익을 위해 함께 하고 있다. 여기에 동맹을 빌미로 훼방 놓는 일에 앞장서라고 하는 것은 굴레를 강요하고 있는 처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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