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미국, 국익을 앞세운 도·감청이라도 불법은 불법이다

한국재난안전뉴스 최종걸 편집인 | 우리가 영화 속에서 본 도·감청 행위는 어떤 의도에서 비롯된다. 상대방으로부터 상대방 모르게 뭔가 얻어 내야 할 사안이 있기 때문이다. 내 이익을 위해서이다. 다시 말해 영장 없는 도·감청 행위는 불법이지만 죄를 묻는다면 들킨 죄이다.

 

이번에 미국 국방부 기밀문건에서 폭로된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대한민국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도·감청 의혹도 그럴 것이다. 미국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살상용 탄약 지원 문제를 한국 정부가 어떻게 결정할지를 알고 싶어 했다. 유출된 미 국방부 기밀문건에서 드러났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NYT)와 워싱턴포스트(WP) 등 미국의 유력매체들이 보도한 미 국방부 기밀문건 내용 속에서 그 부분이 노출됐다는 점에서 미국이 알고 싶어 하는 사안이 이거였다고 추측할 수 있다. 살상용 무기 지원을 반대하는 한국이 어떤 관점을 취할지가 미국으로서는 관심사였다고 보인다. 이번 폭로처럼 CIA의 대통령실 도·감청이 사실이라면 미국은 얼마든지 자국의 이해관계가 얽힌 사안에 대해 한국 정부가 어떤 정책을 취할지를 선택적으로 살필 수 있겠다고 추론할 수 있다.

 

우리 대통령실은 도·감청 의혹 폭로를 부인했지만, 당사국인 미국 국방부는 자국의 유력매체 폭로에 대해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어 CIA의 도·감청 의혹은 사실일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대통령실은 지난 11일 도·감청 의혹에 대해 “터무니없는 거짓”이라는 공식 입장을 냈다. 대통령실은 입장문을 통해 “(대통령실은) 군사시설로, 과거 청와대보다 훨씬 강화된 도·감청 방지 시스템을 구축, 운용 중에 있습니다.”라고만 밝힌 체 도·감청 여부는 명확히 이야기하지 않고, 유출된 내용에 대해서만 ‘거짓’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부 장관은 11일(현지시간) 미 정부 기밀문건 유출 의혹 파문과 관련해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동맹 및 파트너들과 긴밀한 협력을 지속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유출 문건이 지난 2월 28일과 3월 1일자 자료라는 사실도 공개했다. 이어 “ 우리는 이 사안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며 "우리는 동맹 및 파트너들과 긴밀한 협력을 지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 어떤 것도 미국을 안전하게 지키는 것으로부터 우리를 막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미국을 안전하게 지키는 길이라면 도·감청도 있을 수 있다는 뉘앙스이다. 다만 이번처럼 기밀이 누출된 들킨 부분을 철저하게 조사하겠다는 입장이다. 도·감청도 국익을 위한 행위라는 점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그렇다고 한국 국익과 미국 국익이 다 같을 수는 없다. 외교는 철저히 자국 국익을 위한 행위라는 점에서이다. 국내에서 펼쳐지는 사이버 전쟁은 비단 남북뿐만 아니라 한미 간에도 펼쳐지고 있다는 것을 이번 사태는 보여주고 있다. 남북은 미사일 등 군사적 행위에 대해 전략자산을 동원 감청을 하고 있다면, 미국은 이번 사태처럼 한미 간 이해충돌 사안을 살펴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국익을 위해서라면 도·감청은 늘 있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박경리 소설가 쓴 ‘토지’ 대목에는 ”지키는 사람 열 있어도 도적 한 놈을 못 당한다“는 말이 이번 사태로 더욱더 와 닫는다. 미국 매체가 폭로하지 않았다면 도·감청 행위는 버젓이 지금도 이어졌을 수도 있다. 우리 정보당국도 국익을 위해 국내외에서 자행되는 불법 도·감청 행위를 사전 차단하는 역량을 발휘하기를 바란다. 도·감청을 차단하는 것도 국가 위기관리의 기본에 속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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