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그렇게 중요했으면 반도체공대 만들었어야

한국재난안전뉴스 최종걸 편집인 | 교육은 100년을 내다보고 인재를 양성하는 거라고 귀에 딱지가 생기도록 들어왔다. '교육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 라고. 이 말을 새삼 소환한 건 지난 7일 윤석열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반도체 인력 양성을 주문하는 과정에서 교육부 차관이 질책을 받은 이후 관련부처가 대책마련에 착수했다고 연이은 보도 때문이다. 교육부가 대학 학과 정원 문제로 대통령으로부터 언성 높은 질책을 받기는 처음일지도 모른다. 교육부만큼 행정 원점이 다양한 부처도 없을 것이다. 섬마을부터 수도 서울소재 대학까지 교육부 정책을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 질책의 진앙지는 4차산업혁명시대의 쌀이라는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인재양성 문제였다. 인력 재난이다. 이를 위해서는 관련 학과 정원을 늘려야는데 수도권 대학에는 정원 규제 때문에 인력양성이 현실적으로 막혀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웃기는 변명이다. 대학이 수도권만 있나. 포스코가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포항에 포스텍(포항공대)를 설립했고, 대전 유성에는 카이스트대학교와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 광주광역시에는 광주과학기술원, 그리고 올해 한국전력은 한국전력국제원자력대학원대학교외에 본사가 있는 전남 나주에 한국에너지공과대학교(한전공대)를 개교시켰다. 부지와 교수요원 및 인력에 조 단위 재원이 필요한 만큼 쉽지 않은 결정이지만 회사 생존과 국가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결단에서 탄생한 것이다. 아산병원, 차병원 등 민간 병원들도 자체 인력을 안정적으로 육성하기 위해 각각 울산과 경기도에 의과대학 중심의 종합대학을 두고 있다. 교육부가 반도체관련 학과 정원이 수도권 제한 때문에 늘릴 수 없었다는 변명은 백년은 둘째치고 한치 앞도 내다보지 않았다는 고백이나 다름없다. 수도권만 고집해야하는 이유를 찾기 어렵다. 포스텍이나 카이스트는 지방에 있지만 세계 대학과 경쟁하고 있다. 지방 소재 대학과 대학원들도 각기 특화된 학과를 중심으로 대학의 자존심 지키고 있다.

 

지방균형발전을 목표로 국방부, 법무부, 외교부 등 극히 일부 행정부처만 서울에 남겨두고 정부청사마저 거의 대부분 세종시로 이전했고, 한국전력, 한국수력원자력, 국민연금, 한국거래소 등 주요 공기업들이 연고도 없는 각 지방으로 이전한 마당에 수도권 타령은 그동안 교육부가 얼마나 그늘에서 무사안일로 허송세월을 보냈는지를 대변한다. 국가 예산의 상당부분을 운용하는 교육부가 백년대계를 위했다면 또 대학설립 추이를 지켜봤다면 기업들에 먼저 찾아가 미래형 인재양성에 필요한 사항이 무엇인지 찾았어야 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반도체 웨이퍼를 들면서 반도체 공장 미국유치를 역설하자 이번에는 윤석열 대통령도 국무회의때 반도체 웨이퍼를 보고 반도체 인력양성 대책을 지시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7일 국무회의에서 “반도체는 국가 안보 자산이자 전체 수출액의 20%를 차지하는 우리 경제의 근간”이라며 전 부처에 반도체 인재 양성을 위한 특단의 노력을 주문했다. 대통령의 질책 하루 만에 교육부는 수도권 대학 반도체 학과 입학정원 증원 방안을 내놓았다. 한마디로 도깨비 방망이로 금나와라 뚝딱 식이다. 교육부가 대책을 내놓더라도 국회라는 법을 통과해야 가능하다. 대통령 질책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방안을 내놓는다 해도 일개 행정부처가 입법부 국회를 거치지 않고는 한발짝도 움직일 수 없다. 국회가 나서지 않는다면 공염불이다. 한가지 참고될 사례가 있다. 한전공대 설립을 위해 전남도와 한국전력 그리고 해당지역 국회의원들이 필사적으로 국회에서 특별법 제정을 위해 사투를 벌이다시피 한 게 바로 지난해 였고, 올해 개교를 했다.

 

반도체산업협회가 추산한 향후 10년간 관련 인력 3만여 명이 필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 기준으로 매년 졸업을 하는 학생수는 500여명도 안 되는 수준에서 기존 법 테두리를 벗어난 정원 늘리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현재 상황으로는 반도체 인력 양성을 위해서는 기존 사립학교법외에 특별법으로 모든 규제를 돌파할 길 밖에 없다. 삼성과 SK 등 세계 1등 반도체기업들이 머리를 맞대고 요구하는 내용을 교육부가 수렴해서 국회에 특별법 제정을 사투에 가깝게 설득해야 그나마 시기를 앞당길 수 있다. 밥값은 이런 때 하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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