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재난안전뉴스 이계홍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정브리핑에서 "이제 의대 증원이 마무리된 만큼, 개혁의 본질인 지역·필수의료 살리기에 정책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밝히면서 의료개혁 추진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이날 윤 대통령은 "정부는 헌신적인 의료진과 함께 의료개혁을 반드시 해내겠다", "멈출 수는 없다"는 등의 표현을 동원해 의료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개혁을 완수하겠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으로 인한 의료 공백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정부는 이같이 의료개혁 추진 의지를 재확인했다. 2025학년도 의과대학 증원을 예정대로 진행하는 한편, 전공의에 과도하게 의존했던 상급종합병원 구조를 '전문의 중심 병원'으로 전환하는 데 속도를 낼 방침이다.
필수·지역의료 강화에 박차를 가하고 의사와 환자 모두를 위한 의료사고 안전망도 구축할 방침이지만, 의사들의 여전한 반발에 개혁은 진통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우선 정부는 상급종합병원이 '전문의'를 중심으로 중증질환 진료에 집중하는 구조로 전환하기 위한 밑그림을 그리고,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막바지 손질 중이다.
정부는 상급종합병원이 전문의와 진료지원(PA) 간호사 등 숙련된 전문인력을 중심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인력구조를 재설계하고, 의사 인력의 40%까지 차지하던 전공의 비중을 20%로 줄이는 방안을 추진한다. 특히 PA 간호사를 법제화하는 내용이 담긴 간호법이 전날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정부 정책에 힘을 보탤 것으로 전망된다.
경증·비응급 환자는 가까운 동네 병의원에서, 중증·응급환자는 상급종합병원에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비용 구조도 재점검한다.
응급실 과밀화를 해소하고자 경증·비응급 환자가 권역응급의료센터와 같은 대형병원 응급실 이용 시 본인 부담분을 현행 50∼60%에서 90%로 인상하기로 했다.
저평가된 필수의료 분야의 보상이 강화되도록 수가(의료서비스의 대가) 체계를 조정하고, 1천여개 중증 수술을 선별해 과감하게 수가를 올리는 방안 등도 추진한다.
이 과정에서 필수의료의 가치를 충분히 반영하도록 '공공정책수가'를 마련해 보상을 강화한다. 공공정책수가는 행위별 수가를 보완해 필수의료 분야에 적용하는 보상체계를 뜻한다.윤 대통령 역시 의료진에 대한 보상을 강화하기 위해서라도 정책수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응급실 의사가 부족한 게 근본 문제인데, 그분들에 대한 처우가 좋지 않기 때문"이라며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서라도 수가를 개선해야 하고, 행위수가에 더해 정책수가가 만들어져야 하는데 그동안 그런 걸 안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윤 대통령은 의사와 환자 모두를 위한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도 약속했다.복지부는 불필요한 소송을 줄이고자 의료사고 시 환자에 대한 의료진의 설명을 법으로 의무화하고, 도움이 필요한 환자와 가족을 도울 '환자 대변인'(가칭)도 도입하기로 했다.
필수진료 과목을 대상으로 의료사고 배상 보험료를 지원하고, 의료사고 형사 특례를 법제화하는 등 의료진이 소신껏 진료할 수 있는 여건도 마련한다.의료인 배상 책임보험 가입을 통해 피해자는 충분히 보상받고, 의료인들은 형사처벌 특례를 도입해 소신껏 진료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보건복지부는 이번 주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을 포함한 의료개혁 1차 실행방안 등 구체적인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윤 대통령이 국정브리핑에서 의대 증원을 포함한 의료개혁을 끝까지 완수하겠다는 원칙을 강조하면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제안했던 2026학년도 의대 증원 유예안 등은 논의에 오르지 못할 가능성이 커졌다.
의료계는 2026학년도 의대 증원 유예는 당연하고, 당장 2025학년도 의대 증원도 재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이어서 의정 갈등의 골은 쉽사리 좁힐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PA 간호사를 법제화하는 간호법이 통과된 데 대한 반발도 크다.
수도권의 한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어떻게든 버티고 있지만 전공의들의 사직 후 절대적인 인력이 부족한 탓에 예전만큼 환자를 받을 수 없는 게 현실"이라며 "아무리 방향성이 좋더라도 당장 현장이 돌아가지 않고 있는데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의사들 사이에서는 '전문의 중심 병원이 아니라 PA 간호사 중심병원으로 전환하겠다는 거냐'는 날 선 비난이 쏟아지기도 했다.응급실 등 병원에 남아있는 의료진들은 '번아웃'을 호소하는 한편, 정부가 당장 현장에서 겪는 의료진의 어려움을 외면하는 게 아니냐고 지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