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뛰기는커녕 걷기도 힘겨운 반도체 전쟁 서막...피할 전략은 있나

한국재난안전뉴스 최종걸 편집인 | 중국도 마침내 미국과의 반도체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카드를 꺼냈다. 미국의 온갖 반도체 제재를 감내하다 첫 보복 조치로 미국의 반도체 칩 기업인 마이크론사 칩에 대해 구매 중단 조치를 단행했다. 마이크론사는 중국과 홍콩에 전체 물량의 25%를 수출하고 있어 매출액의 25%를 포기해야 할 판이다. 중국은 서방 주요 7개국(G7) 정상들이 21일 일본 히로시마에서 정상회담 이후 공동성명에서 “광범위하고 불투명한 산업보조금, 국영기업의 시장 왜곡, 강제 기술이전 요구 등 비(非)시장 정책에 우려를 표한다”고 중국을 겨냥했지만, 중국은 즉각 “마이크론의 심각한 네트워크 보안 위험이 발견됐다”며 마이크론사의 칩 구매 중단 조치로 맞대응했다. 미국은 중국의 반격을 의식한 듯 이미 수개월 전부터 마이크론사의 빈자리를 삼성과 SK하이닉스 칩이 대신할 것을 우려해 직간접적으로 그 자리를 대체하지 말 것을 요구해왔다. 우리가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중국이 삼성과 SK하이닉스 칩을 선택하느냐이다. 또 미국이 삼성과 SK하이닉스에게 중국 제재에 동참을 강요할지다.

 

사실 G7 정상들의 공동성명 중 반도체 부분은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이나 반도체법과 다르지 않다. 각국은 반도체 관련 사안을 군사 안보적 측면에서 기술 보호와 생산 관리를 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누가 누구에게 삿대질할 사안이 아닌 초격차 기술 경쟁만 있을 뿐이다. 그 초격차 기술과 생산 우위를 보호하기 위해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기술과 시장을 통제받고 있는 셈이다. 미국은 정부도 모자라 의회까지 나서 한국 정부와 한국 기업을 통제할 태세이다. 보도에 따르면 미 하원의 마이크 갤러거 '미중전략경쟁특위' 위원장은 23일(현지시간) "미국은 미국 기업이나 동맹에 대한 경제적 강압을 용납하지 않을 것임을 중국에 분명히 해야 한다"면서 "미국 상무부는 중국에서 활동하는 외국 반도체 기업에 대한 미국의 수출 허가가 마이크론의 (빈자리를) 채우는데 사용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몇 년간 중국의 경제적 강압을 직접 경험한 동맹국인 한국도 (한국 기업이 마이크론의) 빈자리 채우는 것(backfilling)을 차단하기 위해 행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다. 미국과 중국에 대규모 반도체 공장을 건설해서 양국 산업 발전을 도운 한국 기업에 대해 어느 한쪽 편을 들라고 강요하는 건 시장 질서에도 맞지 않는 처사이다. 그 시장은 자유무역시장이기 때문이다. 수요와 공급이 통용되는 시장이지 내 편 네 편 시장은 시장이 아니다. 각국은 세계무역기구(WTO)의 협약을 준수하면서 저마다 자유무역협정(FTA)을 맺고 있다. 그 협정에 따르면 무역에 걸림돌은 있을 수 없지만 곳곳에 보이지 않는 걸림돌을 설치하고 있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또는 ‘바이 아메리카’나 ‘아메리카 퍼스트’라는 기치 아래 인플레이션감축법이나 반도체칩 법은 미국만을 위한 법이지 자유무역질서를 위한 법은 아니다.

 

문제는 그 법을 강요받고 있는 한국이다. 법도 모자라 공개적으로 으름장을 받고 있다. 4년 전 일본이 일제강점기 위안부 문제를 들어 반도체 핵심 소재인 불화수소 등에 대해 전격 수출금지를 단행할 때 이를 대체할 소재를 여타국에서 대체하지 못했다면 삼성과 SK하이닉스는 가동을 중단해야 할 판이었다. 공급망 다변화에 적극 대응했기 때문에 고비는 넘겼지만, 반도체를 둘러싼 공급망 전쟁은 더 교묘하게 더 노골적으로 확전되고 있는 양상이다. 그 중심에 한국이 끼어있는 꼴이다. 반도체 수출 40%를 차지하는 중국에 수출 통제까지 받으라는 압박 때문이다. 최대 시장 중국과 떨어질 수 없는 것은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도 유럽도 일본도 마찬가지이다. 글로벌 공급망 속에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자유무역체제에서는 그렇다. G7이 만나 큰소리는 쳤지만 돌아온 건 대중 압박의 선봉에 선 미국 기업 마이크론에 불똥이 떨어졌다.

 

윤석열 정부 들어 대통령부터 영업사원 1호로 뛰겠다 였고, 대통령은 정부와 기업이 원팀으로 뛰어라고 주문했다. 미·중 전선에 잘 못 뛰어가면 사지로 뛰는 상황이다. 미국은 반도체 통제에 이어 국내 기업의 사활이 걸린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을 국제노선의 독점적 지위를 들어 반대했고, 원자력발전소 수출까지 통제하고 있다. 분위기이다. 중국은 잇단 대중 고립 외교에 나서고 있는 한국 정부에 무언의 압박을 가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중국 내 네이버 접속 불능 조치 등 일련의 신호를 보내고 있다. 미·중의 고래 싸움에 뛰기는커녕 걷기도 힘든 상황이다. 국가가 나서서 기업과 국민이 뛸 수 있도록 길을 열어야 기업과 국민이 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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