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美정보당국에 흔들리는 대한민국 정보주권

한국재난안전뉴스 최종걸 편집인 | 대한민국 대통령실이 미국 정보기관에 흔들리는 신세가 됐다. 지난 7일부터 미국의 뉴욕타임스(NYT)와 워싱턴포스트(WP) 등 유력 언론매체들은 미국 정보기관이 우크라이나 전쟁 지원 등 문제와 관련해 한국 정부를 도·감청해 온 정황이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우리 대통령실 내부 논의 사항들이 지난 3월부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나돈 것을 이들 매체는 사실 여부 확인을 통해 지난 7일부터 보도해 충격을 주고 있다. 대통령실의 가장 핵심부서인 국가안보실에서 논의된 내용들이 속속들이 감청됐다는 점에서 묵과할 수 없는 사안이다. 한마디로 대한민국 최고 수뇌부를 농락한 사태이기 때문이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영국과 이스라엘 등 서방 우방도 이번 기밀문건 유출에 당사자라는 점이다.  

 

이들 미국 매체들이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김성환 전 안보실장과 비서관들이 나눈 기밀 내용이 고스란히 SNS에 알려졌고, 그 내용은 미국 정보기관이 감청을 통해 확보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안보실이 뚫렸다면 대통령실 전체가 미국 정보기관의 감시를 받는 것이나 다름없다. 정보화시대에 핵심은 정보를 지키는 일이지만 이런 주권을 내준 셈이다. 

 

이를 보도한 뉴욕타임스(NYT)마저 이번 도청사태로 한미 관계가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할 정도이다. 우려 이전에 주권국가 대통령실을 감청하고 또 이를 통해 대한민국 정부를 압박하는 것은 동맹이라고 할 수 없다. 용납할 수 없는 공작이기 때문이다.

 

미 정보기관들이 국방부에 정보 보고한 문건들이 사진 형태로 촬영돼 지난 3월 SNS에 대량 유출된 내용을 검증해 보도한 NYT는 사법당국이 조사에 들어간 가운데 해당 정보기관들은 내용을 전면 부인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도청 내용이 사실이라는 뜻이다. 유출 정보 중엔 대통령실 안보실장과 비서관 간에 미군 포탄공급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우회 공급’이 될 것을 우려하는 내용도 담겨 있다. 감청 내용에는 최근 물러난 김성한 국가안보실장, 이문희 외교 비서관이 등장하고,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포탄공급 압력을 가할 가능성을 놓고 논의하는 대목도 나온다.

 

대한민국 대통령실 안보실이 고민하는 대목들을 속속들이 감청한 것이다. 정부는 살상 무기의 우크라이나 지원 반대 입장인데, 지원해야 할 수단과 방법을 고민해야 하는 내용들이다. 해당 문건은 작성자가 미국 중앙정보국(CIA)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 나와 충격을 주고 있다. 해당 문건 내용 중에는 정보 출처가 ‘신호 정보 보고’(시긴트)라고 적힌 부분이 있다. 시긴트는 전자 장비 취득 정보, 즉 도·감청한 내용이라는 뜻이다.

 

이번에 이를 보도한 WP는 지난 1972년 미국 닉슨 대통령의 지시로 미국 민주당 당사에 도·감청 장치를 설치했다고 폭로한 바로 그 매체이다. 그 보도로 닉슨 대통령은 탄핵당했고 임기중 물러났다. 대한민국 정보기관인 국정원도 국회 내 의원 활동 동향들을 감시하는 사무실을 뒀다가 발각돼 문제가 된 적이 있었지만, 미국 CIA가 대한민국 대통령실을 감청하고 있었다는 것은 명백히 주권과 관련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국가 존망과 관련된 문제가 사전에 노출됐다면 협상과 협의를 할 수 없다. 일방적으로 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미 우리 전략을 훤히 꿰뚫고 있는데 어떤 협상이 가능하겠는가. 일찍이 병법의 대가인 손자는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고 설파했다. 미국 육군사관학교 전술학 교재로도 쓰인다는 손자병법에 나오는 대목이다. 뚫은 CIA는 자국을 위해 정보기관의 역할을 다했다고 볼 수 있지만, 우리 국가의 정보주권은 어떻게 할 것인가. 현명한 신속한 대응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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