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공직은 신독이어야 한다

한국재난안전뉴스 최종걸 편집인 | 전환시대의 논리가 있다. 하루에도 새벽 아침 점심 저녁이 있는 것처럼. 제국도 그렇다고 배웠다. 지금 대한민국은 산 넘어 산 이다. 그 사이에 골이 깊어지고 있다. 서로가 서로를 니탓이라고 삿대질한다.

 

우린 주변 국가들과 교류하고 있어서 옆 집 옆 나라와 많은 사연을 알고 있다. 국사라고도 하고 세계사라고도 한다.

 

그러면서 배운게 있다. 백성의 배를 굶주리게 하는 군주는 더 이상 그 자리에 있을 필요가 없다고 배웠다. 누구나 밥 한끼정도는 자기식대로 먹을 수 있는 세상을 펼쳐야 세상이 평화로웠다. 그 과정에서 소위 공직자라는 사람들은 국민의 아픔을 자기 아픔처럼 함께 굶고 함께 나누는 삶을 살았다. 그때 태평성대가 열렸다.

 

하지만 인플레이션 스테그플레이션 푸틴플레이션 런치플레이션 그러다 골목플레이션이라는 말도 나올 판이다. 고금리 고물가 고환율이 그렇다. 그런데도 그 플레이션을 서로 탓하고 있다.

 

여기서 한가지 소환하고 싶은 재상이 있다. 중국 청나라때 태평천국의 난을 진압하고 질서있게 퇴임한 증국번(曾國藩)이었다. 그는 한족이었지만 한족인 홍수전이 일으킨 태평천국의 난을 진압했다. 증국번도 그 난을 진압했으니 황제가 될 수도 있었지만 만주족인 청나라 정권을 사수했다. 그러면서도 피폐한 민심을 달래고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그 스스로 시장에 가서 물건도 사고 때론 고급 술집에 들러 음풍농월을 했다. 이유는 태평난국으로 쑥대밭이된 농업 상업을 장려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래야 농민 산민 어민들이 직접지은 농산물을 시장에 비싸게 팔 수도록 본인이 솔선수범했다. 그러면서도 퇴근후에는 의관을 정제하고 밤새 글을 써서 스스로를 다잡고 어떻게 하든 청나라 왕실의 안위를 챙겼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닭벼슬도 벼슬이라고 그 직위를 이용해 직권을 남용하는 독직(瀆職)은 끝까지 경계했다. 그는 재상이라는 막중한 책무를 다하면서도 동생과 자기 자식들에게 편지로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구구절절이 지도편달한 소위 증국번가서(曾國藩家書)를 남길 만큼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에게도 공직자의 가족답게 처신하기를 당부했다.

 

아들과 부인에게 편지를 써서 공직이 끝나면 고향으로 돌아갈테니 한치라도 나로 인해서 호의호식 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고 한다. 그 서찰이 소위 ‘증국번 가서’ 이다. 공직자의 모범을 증국번이 보였다. 한자리 올랐다고 경거망동하기보단 그럴수록 더 낮은대로 임해서 세금을 아껴쓰고 남은 세금은 국민의 안위를 위해 썼다고 한다.

 

우리 사회는 지금 더 투명한 세상을 요구하고 있다. 누구도 그 투명으로부터 예외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요구받고 있다. 지금 내가 밟고 걸어가는 길은 후세대들이 사표로 삼아 걸어갈 길이라는 걸 잊어서는 미래가 없다. 겨우 5년정권은 더 낮게 더 깊게 국민과 함께 새로운 미래를 함께 걸어가야 서로 동참할 수 있다.

 

증국번이 좌우명으로 삼았던  신독(愼獨 홀로 있을때도 스스로 몸가짐을 바르게 한다)은 우리 공직사회가 한번쯤은 되새겨야할 경구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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