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사회적 약자에 대한 법 관리는 과연 따뜻한가

대구 수성구 방화 살인 사건

 

한국재난안전뉴스 이계홍 선임기자 |  7명의 사망자를 낸 대구 수성구 변호사 사무실 방화 사건은 단순 사건이라고 볼 수 없다. 우선 인명 피해가 엄청나다는 데 경악하지만,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모순에 대해 깊이 성찰하게 하는 면이 있다. 

 

방화 살인범을 옹호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며 몇마디 단상을 말하고자 한다.  

 

방화 살인범이 저지른 만행으로 숨진 피해자들이 모두 평범한 샐러리맨들이란 점이 가슴 아프다. 그들은 평범한 우리의 이웃들이다. 어쩌면 방화 살인범과 비슷한 인생을 사는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그의 범행 의도와는 완전 다르게 엉뚱한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다는 점에서 용서받을 수 없다. 

 

희생자 중 한 여직원은 결혼한 지 1개월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사무실에서 4~5년 일하면서 한달 전 결혼했는데 이같이 참변을 당했다.  

 

변호사 사무실 사무장은 중학생 초등학생, 두 딸을 둔 가장이었다고 한다. 90살이 넘은 아버지를 극진히 보살피는 효자였다고도 하는데, 할아버지는 “애가 출근했는데 아직 퇴근하지 않았다”고 말해 주위를 눈물짓게 했다고 한다. 

 

변호사 사무실을 함께 쓴 다른 변호사와 함께 숨진 또다른 사무장도 큰 소리 한 번 안낼 정도로 착하고 순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평범하고 착한 사람들이 다만 그 자리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피해를 고스란히 받았다는 것은 지울 수 없는 참극이자 비운으로만 치부해야 할까.  

 

방화 살인범은 대구 수성구 범어동 신천시장에 주상복합건물을 짓는 사업에 6억 5000만원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방화범은 시행사와 약정을 맺고 투자했으나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하자 소송을 냈다. 
 
방화 사건은 소송 패소로 재산 손실을 본 투자자의 보복 범행으로 드러나고 있지만, 소송 상대의 법률 대리인에게 위해를 가하려 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해당 변호사는 사건 당일 외부 출장을 나가 화를 면한 것으로 드러났다. 

 

방화범은 재건축 사업 시행사 대표에게 “돈을 갚으라”는 협박 문자와 함께 시너통 사진을 전송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패소하게 된 시행사 법률 대리인 변호사에게도 몇차례 협박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즉 자신에게 패소케 한 변호사에게 원한을 품었을 개연성이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놓쳐보아서는 안되는 지점이 있다. 돈없고 백없고, 가난하고 외로운 사람일수록 송사에서 패하게 되면 증오와 사회에 대한 불만을 가질 수 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인식이다. 억울하고 분하고 비통하다고 자학하며 사회나 상대방에게 원한을 가질 수 있다.

 

필자의 경우도 그런 경험을 가진 적이 있다. 시골 선영에 연고없는 무덤이 2기 들어서 있어 이를 경찰에 신고하고, 고소장을 쓰고 나왔더니 경찰서에서 인지 사건으로 돌려 이리저리 뺑뺑이 돌려 지친 나머지 뒤로 물러앉고 만 적이 있다. 법을 안다는 이유로 밟아버린다.

 

상대편은 옛날부터 묘가 있었으나 평지화되어서 다시 봉분을 세웠다고 주장했다. 설사 그것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이는 산주(山主)에게 허락을 받거나 양해받을 일이다. 기왕에 남의 산에 묘를 새로 쓰면 응당한 예의를 취하고, 허락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중 불쾌한 일은 수십 년동안 방치했던 묘를 다시 크게 봉분을 세우는 태도가 그들이 법무 계통에서 일하는 사람이고, 또 경찰서 경제반장도 그들을 잘 안다는 식으로 일방적 편파성을 보였다는 점이다. 그래서 먼 후일 억울하고 분노한 나머지 경제반장에게 쫓아가 어떻게 한번 물고 늘어질까 하다가 물러앉았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구 방화 살인범과 같은 생각을 가졌던 셈이다.

 

필자는 그런 것에 신경을 쓸만큼 한가로운 편도 아니고, 소소한 것에 목숨을 걸고 싶은 마음도 없어서 지나쳐왔지만 해마다 산주에게 말 한마디 없이 자기 땅인 양 묘를 더 단장하는 모습을 보고 조치를 취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로 번민했다. 이게 사실은 모두 불법이라고 한다. 집안 사람들은 장손인 필자의 무능을 탓하기도 해 시골 내려가는 것조차 겁이 날 정도다. 

 

어쨌든 이런 문제는 그 당사자보다 재판을 뺑뺑이 돌린 경찰이 인지사건으로 돌려 필자에게 불리하게 재판이 진행되고, 필자와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재판이 진행되었다는 데 화가 치밀었다. 뭔가 명쾌하게 걸러진 것이 없었다. 산 소유주가 재판에 참여한 적 없이 그들끼리 어떻게 마무리 지은 모양인데, 사건이 종결되었다는 것도 통보해준 적이 없다. 필자는 당장 먹고 사는 문제도 아니고 해서 지나쳐왔는데, 문중에선 무엇보다 필자가 무능하다고 질책한다. 억울하게 당하고 있냐는 항변이다. 

 

도대체 한국의 법은 정의롭게 작동되고 있는가. 과연 공평하고 공정한가. 가난하고 외로운 약자라고 해서 무시하고 짓밟은 것은 아닌가. 귀찮다고 접근도 못하게 하는 오만과 군림을 보여왔던 것은 아닌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법 관리는 과연 따뜻한가를 돌아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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