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美반도체 지원법, 독배 마시라는 것 아닌가

한국재난안전뉴스 최종걸 편집인 | 지난달 28일 미국 상무부는 반도체 지원법에 대한 구체적인 조건을 제시했다. 그 조건을 보면 지원이 아니라 덫으로 보인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경우 반도체 수출의 최대 시장인 중국 시장을 포기하라는 요구도 있다. 중국 수출 비중이 40%를 넘고 반도체가 우리 수출의 2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의 반도체 지원법은 그야말로 독배나 다름없다.

 

1억 5천만 달러 이상의 보조금을 지원받는 반도체 기업들은 크게 6가지 요구조건을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선 미국 내 반도체 생산을 확대하고 세계 공급망을 강화하는지, 미국의 국가안보 이익을 증진하는지, 미국에 군사용 반도체 장기공급과 중국 등 우려국 배제를 단서로 달았다. 이어 해당 기업에 계속된 투자와 업그레이드를 통해 공장을 장기간 운영할 수 있는지를 따졌다. 해당 기업의 재무 건전성, 사업의 예상 현금 흐름, 수익률 등 수익성 지표를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현금 흐름과 수익이 전망치를 초과하면 미국 정부와 초과분 일부를 나누자고도 했다. 사업이 기술적으로 가능한지 기업이 공장을 지을 준비가 됐는지 환경 등 관련 규제를 통과할 수 있는지도 요구했다. 인력개발 직원들의 숙련도와 다양성 확보 그리고 경제적 약자 채용 계획서도 내라고 했다. 해당 지역 반도체산업 요구 충족 등 공장 직원과 건설 노동자에 대한 보육 서비스 제공을 해야 한다고도 했다.

 

이것도 모자라 사회 공헌 기업의 미래 투자 의지와 지역사회 공헌, 미국에 연구개발(R&D) 지원, 미국산 건설자재 사용 등도 추가했다. 말이 지원이지 이름만 투자유치고 미국 반도체공장을 건설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간판만 삼성이고 SK하이닉스이지 미국 반도체공장이라는 뜻이다.

 

이 같은 요구조건을 충족시키려면 최대 수출시장인 중국 시장을 포기해야 한다. 시장이 없는 기술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반도체 수출 비중이 우리 전체 수출의 20%가 넘는 상황에서 한마디로 날벼락 맞는 격이다. 미국의 요구로 대규모 투자발표를 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는 그렇다. 반도체 공급망을 미국이 좌지우지하겠으니 따르라는 것이다. 지원 조건 내용은 마치 금리 상한선이 없는 사채업자 수법처럼 보인다. 더했으면 더했지, 모자라지 않다. 세부 조건은 투자부터 고용 그리고 수출까지 통제받아야 한다. 대규모 투자에 부담을 무릅쓰는 기업에 기업 영업기밀과 현금흐름까지 내놓으라는 건 이게 자본주의의 나라 미국이 맞는지 의심케 한다. 반도체 동맹 참여 요구도 모자라 보조금을 미끼로 아예 반도체 공급망 자체를 장악하겠다는 의도이다. 흔한 말로 꿩 먹고 알 먹고 하는 식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대낮 날벼락 맞는 소식이다. 삼성과 SK하이닉스는 미국 투자 계획 손익을 따져봐야 할 중대한 문제를 받은 셈이다. 피할 수도 없는 문제라는 점에서 답이 쉽지 않아 보인다. 미국이라는 반도체 회사에 계열사 또는 하청업체 역할을 해달라는 주문이기 때문이다. 원유 패권에서 반도체 패권으로 전환하려는 전략에 우리가 직면한 현실이 목숨을 건 경계선을 걷는 듯하다. 미국의 조건이 아니라도 삼성과 SK하이닉스는 미국 인텔, 대만 TSMC 등으로부터 초격차 기술 경쟁으로 협공 처지에서 시장마저 통제받게 생겼기 때문이다. 결국 투자의 뒤끝은 빈껍데기 꼴이 날 수도 있다.

 

시장을 유지하고 확대하기 위해서는 미국 내 투자 시 보조금을 받지 않거나 국내 공장 증설이라는 답도 내야 할 판이다. 미국 상무부 주도의 지원책인 만큼 우리도 미국이 제시한 것 이상의 국내 투자지원도 해야 할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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