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따라잡기] 아리셀 참사 2심 감형 판결 후폭풍 거세다

유족 합의·대형 로펌 선임…기존 ‘감형 공식’ 증명돼
정치‧사회 각계 “사법부가 중처법 무력화” 비판
민변, “법리도 모순” “법조인으로서 모멸감”
유족, “돈 앞에 정의는 없는가”

한국재난안전뉴스 박종열 기자 |

 

“생계를 위해 불가피하게 합의한 유가족에게 ‘합의했으니 처벌을 낮춘다’는 것은 결국 법원이 ‘돈 앞에 정의는 없다’고 선언한 것과 다름없습니다.”

 

아리셀 참사 유족들의 분노는 중대재해처벌법(중처법)의 가장 큰 문제를 한 마디로 집약한 것이다.

 

그동안 중처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진 기업들은 유족과의 합의와 대형 로펌 선임을 통해 형량을 낮추는 전략을 반복해 왔다. 이런 사후 대처는 사실상 ‘공식’처럼 자리잡았다. 근로자와 유족의 고통을 어루만지고 안전한 환경을 개선하는 것보다 '회장님'을 감옥에 보내지 않거나 형량을 최대한 줄이는 것만이 급선무였다.

 

수원고법 형사1부가 22일 23명이 숨지는 화재사고로 중처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박순관 아리셀 대표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한 1심을 파기하고 징역 4년을 선고했다. 함께 기소된 아들 박중언 총괄본부장도 징역 15년에서 7년으로 감형했다.

 

국민의 법감정과 완전히 동떨어진 판결이 튀어나온 것이다. 중처법의 문제점으로 지적돼온 바로 그 ‘공식’이 다시 한번 효력을 발휘한 것이다.

 

아리셀 역시 사고 직후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 법률사무소 소속 변호인단을 선임하고, 기소 이후에도 초호화 변호인단을 꾸려 재판에 대응했다. 한편으로는 큰 액수의 보상금을 앞세워 유족과 합의에 나서 감형 요소를 쌓아왔다.

 

안전 설비 개선이나 조직 개편 등 실질적인 재발 방지 조치보다는 법률 대응과 합의에 기업의 역량을 집중한 것이다. 기존의 대기업 사례와 판박이다.

 

이런 점을 잘 알고 있는 법원이 중처법의 본래 취지인 ‘경영 책임자 엄중 처벌’을 유족과 ‘합의’했다는 이유 하나로 외면한 것에 대해 정치‧사회‧법조계의 유감과 비판, 분노가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아리셀 참사대책위 법률지원단 손익찬 변호사는 “중처법 취지와 피해자들의 현실을 고려하면 유족과의 합의를 감형 사유로 보기보다,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을 경우를 가중 처벌 요소로 봐야 한다”며 “이번 형량은 지나치게 가볍다”고 유감을 표했다.

 

그러면서 “이 같은 솜방망이 처벌이 반복되면 산업재해 처벌 전반이 약화되고, 결국 중처법의 실효성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충분한 피해 회복을 위해서’라고 했지만, 유족들은 이를 ‘모욕’으로 받아들였다. 피해자 유가족은 “우리가 돈이 없고 권리가 없고 사는 게 힘들어서 이런 판결을 내리는 건가요.”라고 되물었다.

 

민주노총은 이런 성명을 냈다.

 

“한국사회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총망라하는 아리셀 참사에 사법부가 면죄부를 쥐어주는 것으로 화룡점정했다. 오늘의 참담한 판결은 중처법을 무력화하겠다는 사법의 폭거이자 법과 원칙을 바로잡아야 하는 사법부가 스스로 자기의 존재가치를 부정한 것이다. 노동자를 죽음으로 밀어 넣는 일터를 만든 실질적인 책임자를 처벌하는 것으로 산업재해를 막아보자는 중처법의 취지는 매번 법원에서 주저앉는다. 중처법의 무죄 비율은 일반 형사사건보다 3배 이상 높다. 노동자의 안전과 생명을 옹호해야 할 사법부가 자본의 탐욕을 옹호하고 있다.”

 

한국노총도 같은 취지의 성명을 발표했다.

 

“사람이 죽어도, 사후 수습을 하면 책임은 줄어든다는 메시지만을 또렷이 남긴 최악의 판결이다. 재판부에 깊은 유감과 분노를 표한다. 중대재해가 사후 보상으로 환산된다면, 결과적으로 ‘사고 이후 수습이 이루어지면 처벌은 줄어든다’는 잘못된 신호를 남기게 된다.”

 

정치권도 법원 판결을 질책하고 나섰다.

 

진보당은 손솔 수석대변인 명의의 브리핑에서 ‘충격적인 면죄부 판결’이라고 규정했다. 진보당은 “자식과 남편을 잃은 유가족들이 법정 바닥에 주저앉아 오열하는 참담한 광경 앞에서 사법부의 정의는 어디에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권영국 정의당 대표는 성명을 통해 “15년이 부족해 항소했더니 도리어 형을 깎아줬다. 23명 목숨값이 고작 징역 4년이란 말인가? 조금도 납득할 수 없다”며 검찰이 즉각 상고할 것을 촉구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도 이번 판결에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부끄럽다”며 “이번 판결을 강력히 규탄하지 않을 수 없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민변은 2심 재판부가 박순관 대표에게 비상구 설치 의무 및 비상 통로 유지 의무가 없다고 판단한 법리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민변은 “비상구는 층별로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리튬1차전지가 폭발하고 있는 위치가 출입구를 막고 있어서 작업장 한구석에 갇혀서 사망한 것이다. 재판부의 판단은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말했다.

 

특히 양형 사유에 대해 재판부가 노동자 사망의 원인이 박 대표의 중처법 시행령 의무 위반과 안전 보건 관리 체계 미수립 때문이라고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안전을 위한 조치를 완전히 방치하였다고 보이지 않았다’며 감형한 것은 ‘모순’이라고 꼬집었다.

 

피해자들과의 합의를 감형 사유로 꼽은 것 역시 “이 사건의 1심 재판부가 ‘평소에는 안전을 도외시하며 비용을 아끼다가 사고가 발생해도 막대한 금전력을 동원해 합의하고 감형받는 세태’를 지적했음에도, 항소심 재판부는 이를 애써 무시한 셈”이라고 비판의 강도를 높였다.

 

민변은 “오늘의 이 참담한 판결을 오열하는 유가족을 앞에 두고 합리적으로 설명해 낼 자신이 없다. 법조인으로서의 모멸감과 부끄러움마저 느끼게 하는 판결문”이라며 검찰의 상고와 대법원의 파기환송 판결 선고를 주문했다.

 

유족들이 재판부에 낸 의견서는 이랬다.

 

“합의금을 제시하면서 처벌불원서를 종용하는 관행은 사람이 죽어도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신호를 줍니다. 형식적 합의를 감형 사유로 삼지 말아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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