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처벌법 4년, 무엇이 바뀌었나] ②벼랑 끝에 선 중소기업

2024년부터 5인 이상 사업장으로 확대
“안전과 폐업 사이의 가혹한 선택”
방대한 서류 작성에 정작 시간 다 뺏겨
업종별 맞춤형 표준 매뉴얼 공급 필요

한국재난안전뉴스 이계홍 기자 |

 

2022년 1월 27일, 대한민국 산업사에 획을 긋는 거대한 실험이 시작되었다. ‘사람의 생명이 경영의 이익보다 우선한다’는 명제를 법전에 새긴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날이다. 노동계는 산업화 이후 수십 년간 이어진 ‘죽음의 행렬’을 멈출 수 있는 최후의 보루라며 환호했지만, 경영계는 세계 어디에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경영책임자 직접 처벌’이라는 조항 앞에 공포를 느꼈다. 그로부터 4년이 흐른 지금, 이 법이 가져온 빛과 그림자를 5회에 걸쳐 진단한다. [편집자 주]

 

◇비상 걸린 영세 공장들

 

중대재해처벌법은 2024년 1월부터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으로 전면 확대됐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났다.

 

중소기업에 당연히 비상이 걸렸다. 대한민국 기업의 98%를 차지하는 중소기업 현장은 혼란과 두려움이 가득하다. 동네 빵집, 소규모 정비소, 영세 건설 현장까지 법의 사정권에 들어오면서 현장의 안전 공포는 최고조로 커졌다

 

자금력과 정보력이 부족한 영세 업체 사장들에게 중대재해법은 법 준수의 대상이 아니라,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들에게 법은 안전 지침서가 아닌 ‘폐업 선고장’으로 읽히고 있다.

 

경기도 시화공단에서 에어컨 부품을 생산하는 중소업체 대표 박모씨(50)는 “사고가 나면 대표가 구속되고 회사는 공중분해 되는데, 이런 환경에서 누가 제조업을 물려받으려 하겠느냐”고 말했다.

 

 

◇중소기업은 인력난과 자금난 이중고

 

중소기업이 법을 준수하지 못하는 가장 큰 표면적 이유는 ‘사람’과 ‘돈’이다. 법이 요구하는 수준의 안전보건관리체계를 운영하려면 전문 인력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자격증을 가진 안전관리자들은 연봉과 복지가 좋은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으로 쏠린다. 중소기업은 고액의 연봉을 제시해도 지방 근무나 열악한 환경 탓에 구인난을 겪는다.

 

설사 인력을 구한다 치자. 그래도 최저임금 인상과 원자재 가격 상승 속에 안전 설비에 투자할 여력은 거의 없다.

 

정부의 클린사업 지원금 등이 존재하지만, 전체 영세 사업장 수에 비하면 ‘언 발에 오줌 누기’에 불과하다.

 

경기 평택시에서 직원 7명을 데리고 기계 주문 생산을 하는 김만기씨(54)는 최근 공장 매각을 고민 중라고 말했다.

 

그는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하라고 하는데, 자격증 있는 안전관리자는 대기업이 다 쓸어갔고 월급도 감당이 안 된다. 사고 한 번 나면 내 인생은 끝난다는 생각에 밤잠을 설친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중소기업중앙회 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70% 이상이 여전히 법적 의무 사항을 완벽히 이행하지 못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이런 틈을 타 중대재해법 대응 전문을 내세운 무자격 컨설팅 업체나 브로커들이 엉터리 매뉴얼을 수백만 원에 팔아치우는 사례도 적지 않게 나왔다.

 

◇서류 작성에 뺏긴 안전의 역설

 

현장에서 가장 큰 불만은 법이 요구하는 ‘방대한 서류 작업’이다. 작업 전 안전 점검표, 교육 실시 기록, 위험성 평가 보고서 등 작성해야 할 문서가 수십 종에 달한다.

 

현장 인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에서는 사장이 낮에는 기계를 돌리고 밤에는 서류를 만드는 실정이다. 이 과정에서 정작 현장의 실질적인 위험 요인을 제거하는 시간은 줄어들고, 수사기관의 눈을 피하기 위한 ‘증거용 서류’만 양산하는 주객전도의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무슨 대안이 있을까

 

중소기업의 안전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처벌 유예 논쟁을 넘어선 실질적 대책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업종별 맞춤형 표준 매뉴얼을 보급하고, 지역별 안전 공동체를 구성해 전문가의 컨설팅을 공유하는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한다.

 

또한, 안전 설비 투자에 대한 전폭적인 세액 공제와 함께, 안전사고가 없는 중소기업에 대한 정책 자금 우대 등 ‘안전을 지키는 것이 이익’이라는 확실한 시그널을 주어야 한다.

 

중소기업의 도산은 곧 대한민국 공급망의 붕괴를 의미한다는 말에 정책입안자들은 귀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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