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추적] 반복되는 대형 재난…‘생명안전기본법’ 제정 어디로 갔나

법안 핵심은 독립적, 전문적 기구가 사고 조사와 후속 대처
민주당, 16일 ‘국민안전의날’ 맞아 “최대한 신속 처리”
국민의힘은 소극적 입장 “숙의가 더 필요”

한국재난안전뉴스 이계홍 기자 |


12년 전인 2014년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후 그 원인과 책임 소재를 밝히기 위해 2022년까지 세 차례의 독립된 조사위원회가 운영됐다.

 

첫 번째는 특별법 제정에 따라 만들어진 ‘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였다. 검경합동수사본부의 조사 결과에 만족하지 못한 유가족의 요구로 참사 206일 만에 통과시킨 법이었다.

 

이후 ‘선체조사위원회’와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등 두 번의 사고 조사위가 더 꾸려졌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제대로 된 책임자 처벌과 정확한 침몰 원인 규명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후 이태원 참사와 무안공항 참사까지, 같은 문제는 반복되고 있다.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때는 국토부에 책임이 있는데도 국토부 소속 ‘항공사고철도조사위원회’가 조사의 주체였다.

 

이 때문에 대형 참사의 유족들은 독립적 기구가 사고조사를 하도록 규정하는 ‘생명안전 기본법’ 제정을 줄기차게 요구해 왔다.

 

관련 부처 자체 조사나 수사기관의 부실 수사 여부, 한계가 뚜렷한 특별조사위원회 문제로 여야가 충돌해 참사가 ‘정치화’되지 않도록 전문 조직을 만들자는 것이다.

 

올해 1월 15일 국회 본회의에서는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를 국토부에서 국무총리 산하로 옮기는 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무안 참사 유족들이 국토부의 부실 조사를 문제삼으며 법 개정을 요구했었다.

 

 

6년 전인 2020년 21대 국회에서 민주당 우원식 의원 등 29명이 ‘생명안전 기본법’을 발의했다. 그러나 논의도 해보지 못하고 이 법안은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이번 22대 국회에 들어와 지난해에도 발의됐으나 아직 상임위조차 통과하지 못하고 행정안전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이 법 제정은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공약이기도 하다.

 

이 법안의 핵심 내용은 ▲사고 원인에 대한 ‘독립적 기구’의 객관적·공정한 조사 보장 ▲국제인권기준에 따른 피해자 권리와 지원에 대한 구체적 명시 ▲피해자 지원책 마련 과정에 피해자 의견 반영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 및 공동체 회복을 위한 시책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무 명시 등이다.

 

이 법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국가가 보호해야 할 기본 권리로 명시하고, 사고 예방부터 피해자 지원까지 포괄하는 내용이어서, 단순한 개별 법률이 아니라 재난·산업안전 정책 전반을 아우르는 ‘기본법’ 성격을 갖는다.

 

현재 국내 안전 관련 법체계는 산업안전, 재난 대응, 시설 관리 등 분야별로 나뉘어 있다. 이로 인해 사고 발생 시 책임 주체가 분산되고, 사전 예방보다는 사후 대응에 집중되는 구조가 반복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생명안전기본법이 제정되면, 독립적인 조사기구의 안정성과 전문성, 객관성이 담보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가 된다.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에서 조사 업무를 맡았던 황필규 변호사는 “그동안 대형 참사의 조사위원회 자체가 임시 기구인 탓에 직원들의 전문성이나 고용 안정성이 떨어졌다”고 지적하고 “조사 기법도 상당 부분 부족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생명안전기본법이 제정돼 독립된 조사기구가 있었다면, 무안공항 참사 또한 1년 동안 유가족들의 고통을 충분히 방지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아쉬움을 털어놓았다.

 

이 법에 대한 22대 국회 내 논의는 지난해 12월 한 번의 공청회 이후로는 진행된 적이 없는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세월호 참사 12주기를 맞은 16일 생명안전기본법의 조속한 처리 의지를 밝혔다.

 

한병도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안전을 국민의 기본권으로 규정하고 독립적 재난 조사 기구를 만드는 생명안전기본법을 최대한 신속하게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한 원내대표는 “세월호 이후에도 참사는 반복되고 있다. 민주당과 이재명 정부가 그 악순환을 끊어내겠다”며 “정부는 대통령 소속 국민생명안전위원회도 신설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한정애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소명”이라며 “조속한 통과를 위해 국민의힘의 협조를 촉구한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법안을 1차로 심사해야 할 행안위 2소위원회 위원장이 국민의힘 소속”이라며 “민주당에선 안건을 상정해 논의하려고 했지만, 위원장의 권한인 만큼 국민의힘이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고 야당을 탓했다.

 

민주당은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이번 달 내로 단독으로라도 처리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은 법안에 포함된 독립 조사 기구가 기존 부처의 조사기관과 역할이 겹치고, 국가 재난 발생시 시스템 관리와 행정 대응 체계를 규정한 ‘재난안전법’과 중복된다며 숙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각 주체의 구체적 권한 배분과 기업 책임 범위를 둘러싼 이견도 있다. 산업계에선 규제 확대에 대한 부담을 우려하는 시각도 존재한다.

 

국민의힘도 이 법의 취지와 제정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정치권에서는 법 제정 필요성에 공감대가 형성돼 있긴 하다. 다만 아직 법 제정을 향한 실무적 절차가 미진하고, 야당의 의지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이후의 관건은 ‘조사 전문성 확보’다.

 

국회 입법조사처 배재현 행정안전팀장은 “우리나라의 경우 법조인 위주로 조사기구가 구성되는데, 해외에선 해당 분야의 기술적인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을 더 많이 발탁한다”며 조사위원의 다양성 확보를 제안했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16일 “1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지만 4월 16일이 되면 그날의 참담함이 떠오른다. 아직도 세월호의 진실을 온전히 밝혀내지 못했다”며 “그동안 우리는 무엇을 했는지 돌아보면 부끄럽다. 뒤늦게나마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을 약속한다.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고 페이스북에 썼다.

 

세월호 이후 대형참사 때마다 정부가 강조한 ‘다시는 같은 사고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약속이 올해 상반기 내에 법 제정으로 구체화될 수 있을지 국민과 참사 유족들은 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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