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윤정부, 국내기업 앞다툰 대미투자 원인 곱씹어봐야

한국재난안전뉴스 최종걸 편집인 |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삼성전자, SK, 엘지, 현대기아차, 롯데 등 국내 5대 기업이 천문학적인 대미투자를 하겠다고 경쟁적으로 밝히고 있다. 이미 투자를 하고 있거나 투자를 계획하고 있는 규모를 합치면 3000억 달러를 훌쩍 넘는다. 기술과 시장 그리고 지원책이라는 당근이 있기 때문이다. 각종 세제 혜택과 더불어 국내 생산제품 우선으로 구매하는 잇점을 찾아 너도 나도 미국행을 경쟁적으로 발표하고 있다. 미국이 노리는 건 제조업 부활이고 고용창출이다. 미래를 선도할 핵심 산업분아에서 집나간 제조업을 미국으로 돌아오게 하는 리쇼어링과 함께 외국 첨단기업 유치 전략을 동시에 펼치고 있는 셈이다.

 

지난 26일에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화상회의를 통해 220달러(약 29조원) 규모를 신규 투자하겠다고 했다. 회의 도중 바이든 대통령은 감사하다는 '땡큐'를 10번이나 했다고 한다. SK그룹은 이미 전기차 배터리 분야에 70억 달러 투자 계획을 발표한 바 있어 미국 입장에서는 횡재나 다름없는 투자규모이다. 투자도 받고 고용창출 효과도 얻어낼 수 있으니 말이다. 직접 면담이든 화상회의 든 미국 대통령이 지구 반대편 기업 총수와 단독 면담식 회의를 하는 건 이례적인 일이라는 점에서 SK그룹의 위상을 알리는 계기가 됐겠지만 국내 투자환경을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다음날 미국 상원은 자국의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반도체 칩과 과학 법'에 대한 표결을 실시해 찬성 64 대 반대 33으로 가결 처리했다는 뉴스다. 집권당인 민주당 뿐만아니라 야당인 공화당도 합세해서 찬성했다는 소식이다. 이 법안은 미국의 반도체 산업 발전과 기술적 우위 유지를 위해 2천800억 달러를 투입해 우선 미국 내 반도체 시설 건립 지원 390억 달러, 연구 및 노동력 개발 110억 달러, 국방관련 반도체칩 제조 20억 달러 등 반도체 산업에 520억 달러를 지원하게 한다. 여기에는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기업에 25%의 세액 공제를 적용하기로 해 향후 10년간 240억 달러를 지원하는 효과까지를 포함하면 3040억 달러나 된다. 상원의 통과에 이어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는 하원으로 같은 법안이 내려왔기 때문에 이 법은 조만간 통과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 투자를 발표한 삼성전자와 SK도 직간접 수혜를 누릴 수 있는 법안이다. 너도 좋고 나도 좋은 미국식 반도체산업 투자법안이라는 점에서 씁쓸한 뒷맛이 느껴진다.

 

한국의 재벌 총수가 투자하겠다고 발표하고 이 소식을 들은 미국 대통령은 코로나 와중에도 환한 얼굴로 연신 고맙다는 오고 가는 덕담은 윤석열 대통령과 최태원 회장이 주고받아야할 이야기였어야 했기 때문이다. 포스코가 포항과 광양에 제철소를 만들지 않고, 현대중공업이 울산에 조선소를 짓지 않았으면 우리는 제조업의 기틀을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또 삼성과 SK가 반도체 공장을 국내에 증설하고 기술개발에 혼신을 다하지 않았다면 동맹이라는 우아한 손짓을 받지 못했을 수 있다. 미국이 중국의 제조업 굴기에 뒤늦게 당황한 나머지 핵심 미래 산업 주요 기업들의 미국 유치에 열을 올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코로나가 발발하자 당장 급한 백신에 쩔쩔맨 현실에서 핵심 기술이 얼마나 절실한 것인지를 실감하지 않았던가.

 

주요 기업들이 국내에 투자하고 고용창출에 앞장서야할 일을 왜 해외로 눈을 돌리는지 이제라도 곱씹어봐야 한다. 세계 최대 자동차 수요 시장인 중국이 내연기관차에서의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전기자동차로 방향을 선회하면서 이제는 전기자동차 분야에서 세계 1위로 도약하고 있다. 과감한 산업우위 전략이다. 전기자동차에는 미래 산업이 총집합돼 있다는 점에서 정책 결정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결국 이같은 정책을 뒷받침하는 건 법이다. 미국이 여야가 합심해서 미국 산업을 육성하고 보호하기 위한 법을 통과시킨 것처럼 이젠 정부와 국회가 미래 먹을거리를 개척하고 있는 국내 기업들을 위한 법이 무엇인지 묻고 또 물어서 투자와 일자리 창출에 나서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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