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 제로지대' 세계잼버리...하루에도 집단탈수 수백명씩 속출

안이한 안전 대처, 세계가 불안
미국 영국 등 외국 정부들 파견 청소년 안전 문제와 관련해 우려 표명
행정부 폭염 대응 위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사상 처음으로 2단계로 격상
군의관과 간호장교, 응급구조사 잼버리대회 현장에 파견

 

한국재난안전뉴스 이계홍 기자 | 불가마 속같은 불볕 더위, 여기에 충분히 대비하지 못한 안전불감증, 간척지에 대한 무지, 턱없이 부족한 의료 시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하자 언론 통제부터 나서는 구태의연한 모습을 보였다. 

 

세계 각국의 스카우트 지도자와 청소년들이 만나 문화를 교류하고 소통하는 공간인 제25회세계잼버리 대회가 열리고 있는 전북 새만금 간척지의 현실이다. 이번 대회에는 43000여명의 세계 청소년들이 참가했고,  2일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개영식을 가졌다. 

 

그런데 야영지 개영식에서 108명이 온열현상으로 쓰러졌다. 이후 쓰러진 참가자들이 매일 수백명씩 나왔다.

 

또 아침식사로 받은 구운 달걀 80여 개 중 6개에서 곰팡이가 나오는 등 식품 안전에도 빨간 불이켜졌다. 오는 12일까지 열리는 잼버리는 43000명의 대원들이 폭염 속에 열흘 가까이 야영을 이어가야 하는 상황이라 건강 문제 등이 크게 우려되고 있다.  

 

우수한 한국 문화와 자연환경을 세계 속에 알리겠다며 유치한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는 우선 폭염의 문제를 극복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할 입장이다. 

 

행정안전부는 3일 오후 폭염 대응을 위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1단계를 사상 처음으로 2단계로 격상한 가운데, 잼버리 행사장에서도 35도를 웃도는 가마솥더위에 연일 온열질환자가 속출하자 대회 일정을 축소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까지 나왔다.

 

영국, 미국 등 대규모로 대원을 파견한 참가국들도 "현장 상황을 계속 모니터링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3일 대회 조직위원회에 따르면 전날 열린 개영식에서 139명의 환자가 발생했고, 이 중 108명은 온열질환자로 파악됐다. 개영식이 늦은 오후에 열렸음에도 한낮 뜨거운 햇볕에 지친 참가자들이 공연 도중 무더기로 쓰러져 어지럼증을 호소한 것이다.

 

당시 현장에 있던 119구급대원은 "갑자기 너무 많은 사람이 쓰러져 비상이 걸렸다"며 "차량 30대를 배치했는데 환자가 너무 많아서 타지역 구급대를 급하게 추가로 배치했다"고 상황을 전했다.

 

잼버리소방서는 개영식이 열린 하루 동안 구급 출동 304건, 구조 1건, 응급처치 18건을 처리했다.

경찰 관계자 또한 "일부 참가자는 (사람들이 쓰러지자) 울면서 집에 전화를 걸었고, 외부 병원으로 이송된 스카우트 대원도 있었다"고 밝혔다.

 

야영장은 물 빠짐이 용이하지 않은 데다, 숲이나 나무 등 그늘을 만드는 구조물이 거의 없다시피해 폭염을 피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낮 동안 데워진 열기로 밤에도 열대야가 나타나는 일이 잦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왔다. 즉 하필이면 8월 최고조의 무더위에 대회를 열었느냐는 비판이다.

 

더구나 지난달 쏟아진 기록적인 장맛비로 생긴 물구덩이가 한낮 더위에 데워져 야영장은 흡사 한증막을 떠올리게 한다는 경험담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쏟아졌다. 이 물웅덩이에는 모기 등 각종 벌레가 서식해 또다른 위해 요인이 되었다.

 

이에 대한 사전 대비를 하지 못한 것이 이번 잼버리대회를 망친 것이 아니냐 하는 문제점을 제시하는 전문가들도 많다. 무덥고 습한 날씨에 창궐한 모기떼 등 각종 벌레에 물려 병원을 찾는 대원들도 속속 집계되었다. 예견된 사고에 조직위의 준비 상황은 안일하기 짝이 없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그나마 내놓은 폭염 대책이 덩굴 터널과 수도 시설에 불과했다고 참가자들은 불만을 터뜨렸다. 

 

43000여명의 참가 인원을 고려할 때 턱없이 부족한 50개 병상으로 의료 시설도 문제였다. 또한 화장실과 샤워실, 탈의실 수도 모자란 데다, 일부 시설은 천으로만 살짝 가려놓은 수준이어서 대원들이 이용을 꺼린다는 참가자 학부모의 목소리도 있다. 행사장 내 편의점에서는 폭염을 틈타 시중보다 비싼 가격에 얼음을 판매한다는 불만의 소리도 있다.

 

아론 문제점을 지적하자 대회조직위는 언론 통제에 나섰다. ‘제25회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대회 조직위원회가 당초 언론의 자유로운 취재를 허용했지만, 온열질환자가 속출하고 행사장 내 식사 부실, 매점 폭리 등 운영 미숙을 지적하는 비판 보도에 취재 통제에 나섰다는 것. 대회 조직위원회는 3일 “앞으로 델타구역에 들어가려면 취재 시간을 정해서 스카우트 운영요원(IST)과 동행하라”고 공지했다.

 

왜 이렇게 됐을까. 첫째는 침통 더위를 예상하지 않고 무리하게 대회를 강행했다는 점이다. 전국적으로 기온은 35도, 체감 지수는 40도 안팎을 오르내리는 가마솥 더위가 일주일째 계속되고 있다. 행정 당국은 SNS를 통해 무더위에 대비하라는 공지를 내보내는 등 단속에 나섰지만 세계 청소년이 모이는 잼버리 대회장에 대한 안전 점검은 부실했다. 

 

 

이번 행사에 청소년을 파견한 미국 영국 등 외국 정부들은 청소년들의 안전 문제와 관련해 우려를 표명했다.  

 

영국 외무부 대변인은 3일 "영국 국민의 안전을 위해 영국 스카우트와 한국 정부 당국과 긴밀히 소통하고 있다"라며 "잼버리 대회 상황을 계속 모니터링하고 있다"라고 밝혔다고 주한 영국대사관이 전했다.

 

이 대변인은 대사관 영사 직원들이 영국 참가자들을 지원하기 위해 현장에 상주하고 있다고도 밝혔다. 영국은 이번 행사에 단일 국가 중 가장 많은 약 4천500명의 청소년을 파견했다.

 

주한미국대사관도 "이번 행사와 관련한 상호 우려 사항에 대해 한국 정부와 직접 소통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미국에서는 1천여명이 참가했다. 다만 아직까지 대원이 철수한 국가는 없다.

 

정부와 조직위는 추가 대책 마련에 나섰다. 3일 오전까지만 해도 조직위는 "큰 문제 없다"고 밝혔지만 청소년들의 SNS상 증언과 학부모들의 불만 등이 보도되자 의료인력, 냉방시설 확충 대책을 서둘러 내놨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조직위 공동위원장인 김현숙 여가부 장관에게 대회가 끝날 때까지 현장을 지키면서 전 대원의 안전을 확보하라고 지시했다.

 

국방부에는 현장에 그늘막과 샤워시설 등 편의시설을 증설하기 위한 공병대를 지원하고 응급상황 대응능력 강화를 위한 군의관을 신속하게 파견하라고 했다.

 

국방부는 3일 오후 3시 현재 군의관과 간호장교, 응급구조사 등 10여명을 잼버리대회 현장에 파견했으며, 다음날까지 30여명을 추가로 지원할 예정이다.

 

잼버리 공동 조직위원장 가운데 한 명인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이날 잼버리 현장을 찾아 긴급 대책회의를 열고 행사장 내 폭염 저감시설 추가 설치, 폭염 예방물품 지원을 위해 재난안전특별교부세 30억원을 전라북도에 즉시 교부하겠다고 밝혔다.

 

전북도 소방본부는 폭염 취약 시간인 오전 10시∼오후 4시 환자 이송이 빈번할 것으로 보고 구급차를 기존 30대에서 36대로 늘려 운행하기로 했다.

 

한편 지역 노동·환경단체는 참가자 안전을 위협하는 대회 일정을 축소할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민주노총 전북본부는 이날 성명에서 "여러 단체와 전문가가 새만금 야영장에서 중대 재해가 발생할 수 있음을 일찍이 경고했다"며 "더 큰 재난이 발생하기 전에 대회를 즉각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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