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초기부터 시행착오 줄여야

법체계 다시 촘촘하게 손봐 책임 소재 분명히 가려주어야 

 

한국재난안전뉴스 이계홍 논설고문 |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1월 27일)된 직후인 지난달 29일 경기 양주 채석장에서 붕괴사고가 나 노동자 3명이 숨졌다. 지난 8일엔 판교 신축공사장에서 승강기 추락 사고로 2명이 숨졌다. 그 사흘후인 11일 전남 여수 여천NCC 공장 폭발사고로 8명의 사상자를 냈다. 중대재해처벌법 대상이 아닌 50인 이내의 작업장에서 숨진 인원을 합하면 지난 1월 현재 67명이 숨졌다고 한다(노동건강연대 집계). 

 

중대재해처벌법과 관계없이 사고는 계속되고 있다. 사고를 미연해 방지하고, 산업현장 안전을 위한 조치로 이 법이 시행됐지만, 사고는 줄지 않고 여전히 계속되고있다. 왜 그럴까. 구조적인 문제 요인을 제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근본을 해결하지 않고 단속과 처벌만으로는 안전을 도모할 수 없다는 단적인 반증인 셈이다.  

 

재난안전 사고들은 처벌법의 강화가 예상되는 가운데 누가 중대재해처벌법 대상 1호를 차지할까를 우려하던 끝에 연쇄적으로 사고가 터져나왔다. 재난안전의 미비로 앞으로도 이런 사고는 계속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신속한 대처와 처벌법 적용이 나오지 않는다. 고용노동부와 지방고용노동청의 업무 과부하로 일을 보지 못한다는 얘기만 나온다.  지난 1월 한 달간 전국의 일터에서 산업근로자 67명이 숨졌다고 하는데 뉴스에 드러난 것만 인명 손실이 잡히지만, 드러나지 않은 손실이 훨씬 많다는 지적에는 무감각한 편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볼 때 중대재해처벌 사안은 800건에 이른다. 하루 두 건 이상 사고가 발생하는 셈이다. 정부는 올해 사고 위험이 높은 사업장 2만3000여개를 지정, 특별관리에 들어갔다. 사후 대응보다는 예방활동에 집중하겠다고 한다. 현재 800여명의 인력으로 2만개가 넘는 고위험 사업장을 감독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고용부는 8명의 사상자를 낸 여수 NCC 사고에 대해 경영책임자와 안전보건관리 책임자에게 각각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수사에 들어갔다. 당국은 사고 상황을 파악한 뒤 “철저한 원인 조사와 엄정한 수사를 통해 안전보건관리 책임자와 경영자의 책임을 신속히 규명하겠다”고 밝혔다.

 

경기 양주 채석장 붕괴사고도 회사 압수수색에 근로감독관과 디지털포렌식팀 등 45명이 투입돼 법 위반 혐의를 입증하기 위한 증거 확보 작업을 벌였다. 그러나 작업의 복잡성과 사고 혐의를 캐는 데는 여러 가지 어려움에 봉착한다. 결국 시일만 끌게 된다. 

 

2018년 12월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가 목숨을 잃은 김용균 노동자 산업재해 사망사고와 관련해, 지난 10일 법원이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된 김병숙 한국서부발전 대표이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원청이 컨베이어벨트와 관련한 위험성 등을 구체적으로 인식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하청업체 대표와 관리자들은 집행유예와 가벼운 벌금형을 받았다. ‘김용균법’이라고 불리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을 만들어낸 죽음에 대해서도 원청 기업 책임은 물을 수 없었다.

 

산업 근로 현장에서 나오는 죽음 앞에 중대재해처벌법은 무엇을 할 수 있나. 법학자들은 “형법의 언어로 풀이하기 쉽지 않다. 고의인가 과실인가, 시설의 불비인가, 그 책임은 경영자가 져야 하나, 근로 지휘자가 져야 하나. 행위와 결과 사이 인과관계는 무엇인가. 수사, 기소, 재판 과정은 이전의 다른 형사사건과 어떤 차이가 있는가”로 서로 다투다 시일만 끌게 된다고 말한다. 과연 중대재해처벌법이 실효를 거둘 수 있을까. 따라서 선언적 법조항이 빌미를 주는 것은 아닐까, 벌써부터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중대재해처벌법 1호' 수사대상이 된 삼표산업이 안전의무 소홀로 '1호 처벌'을 받을지 여부가 주목되고 있다. 고용부 관계자는 "첫 수사이다보니 따져봐야 할 것들이 많다"면서 "1호라는 타이틀 때문에 재계에서도 결과를 주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무엇보다 법원의 판단은 고용부와 다를 수 있다고 보는 견해들이 적지 않다. 고용부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삼표산업 대표이사를 입건한 뒤 검찰 송치를 거쳐 재판에 넘기더라도 법원이 무죄판결을 내릴 가능성도 부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김용균 법에 따라 경영주가 무죄를 받은 것이 사례로 꼽힌다.

 

삼표산업은 대형 로펌인 김앤장과 광장을 통해 법적 대응책 마련에 나선 상태다. 막대한 자본력과 인맥으로 모호한 법규정을 가지고 다투다 보면 무죄 판결을 받을 소지가 있다는 얘기다.이러다 보니 재난사고가 언론에 보도될수록 로펌이 특수를 노린다는 자조섞인 비아냥이 나오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만 망신을 당할 수 있다.

 

이같은 해석이 가능한 것은 중대재해처벌법이 빌미를 주고 있다. 추상적 문구 때문이다. 상시근로자 50인 이상 사업장에서 사망 등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할 경우 사업주·경영책임자가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받는다지만, 경영자의 ‘안전·보건 확보 의무’에서 구체적으로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적시하지 않았다. 그저 감독·관리 의무만 강조된다. 

 

물론 모호함은 불가피할 수밖에 없다. 수만 가지 직업과 작업 유형, 새로운 작업의 위험까지 더해지는 산업현장에서 중대재해처벌법에 적힌 몇자 되지 않은 법조항으로는 단속과 처벌이 파악되기 힘들다. 

 

우리의 경험칙상 법은 만인에게 친하지 않다. 가진 자, 강자 편에 서있다. 특히 산업안전보건법처럼 형식적 요건을 갖추는 것을 넘어 실질적으로 노동자의 위험을 줄이는 구체적 조항을 만들어야 하는데 현재의 처벌법은 이에 미치지 못한다. 그저 중대재해처벌법 제2조에서 말하는 “경영책임자 등은 사업을 대표하고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 또는 이에 준하여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한국의 특수한 기업 구조로는 오너는 직함 없이도 경영을 좌우한다. 법 문구만으로는 경영책임자가 사주인지, 최고경영자인지, 안전 담당 임원인지 분명치 않다. 이는 경영자협회의 요구로 들어간 문구라는데, 그물망을 빠져나갈 수 있는 도피처임은 분명하다.

 

경영책임자는 법원에서 이렇게 말할 것이다. 고의는 없었다, 몰랐다, 노동자 부주의다... 산업안전보건법 재판에서 숱하게 반복된 경영자의 변이라고 한다. 중대재해처벌법이라고 해서 여기서 비껴갈 수 있을까. 법 기술자를 막대한 비용으로 사들였는데...

 

중요한 건 법의 근본 취지를 살리는 일이다. 이를 위해 처벌법조항을 구체화해야 한다. 따라서 중대재해처벌법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자세가 중요하다. 법 적용 과정에서 불기소, 가벼운 처벌, 심지어 위헌법률심판청구까지 나오는 등 대형 로펌이 활개를 치는 ‘국민적 허무주의’는 극복해야 한다.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을 요구해온 이들이 믿는 건 시민의 성숙한 논의와 참여다. 그리고 당국과 기업은 인원 타령, 예산 타령만이 아니라 사람이 중요하다는 인본주의적 철학적 접근이다. 

 

아울러 기왕에 제정된 중대재해처벌법이라면 보다 촘촘하게 손을 봐 책임 소재를 분명히 가려주어야 한다. 광주 5.18때 그 많은 시민이 죽었는데 아직까지 누가 죽였는지 책임소재가 가려지지 않은 것은 전국민적 불신을 심화시키고, 더많은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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