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재난안전뉴스 최종걸 편집인 | 세계는 우리나라가 전쟁의 상흔을 딛고 세계 10대 대국으로 우뚝 선 것을 부러워한다. 우리도 겪어왔던 저개발국가들은 우리를 성장 모델로 삼고 싶어 한다. 국내총생산(GDP)이나 교역규모라는 수치로 보면 그럴 것이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살아가면서 느끼는 삶의 만족도는 비슷한 국가들에 비해 꼴찌 수준이라는 통계이다. 10대 경제 대국으로 압축성장시킨 주인공들이라 할 수 있는 60세 이상 노인들의 자살률이나 경제 대국의 3세대들인 청년 자살률은 세계 선두권을 고수하는 등 삶의 질이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일 통계청이 발표한 ‘국민 삶의 질 2022’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삶의 질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가운데 36위다. 10점 만점에 5.9점에 불과했다. 통계청이 지난해 삶의 질과 관련한 여가·주거·가족·공동체 등 71개 지표를 분석한 결과 18개 지표가 1년 전보다 악화했다는 분석이다. 내전으로 사회적 갈등 속에 있는 콜롬비아와 지진으로 고통받고 있는 튀르키예와 점수로는 근소한 차이다. OECD국은 우리나라가 지난 1996년 12월에 29번째 회원국으로 참여할 만큼 회원 자격이 까다롭다. 가입 기본자격이 다원적 민주주의 국가로서, 시장경제 체제와 인권을 존중하는 국가여야 하고 회원국 만장일치가 전제돼야 하기 때문이다. 누가 봐도 사람이 살만한 나라들의 협의체이다. 그 협의체 중 부자나라이면서도 삶의 만족도가 꼴찌 수준이라는 점은 부자지만 부족한 부자라 할 수 있다. 벼락부자와 졸부의 전형처럼 들린다. 여가·주거·가족·공동체 영역에서 악화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특히 자살률이 다시 높아졌다. 인구 10만 명당 자살률이 26명으로 2020년(25.7명)보다 늘었다. 이 중 70대(41.8명)부터 급격히 올라 80세 이상에선 61.3명으로 치솟았다. 이는 노인 빈곤율(37.6%)과 사회적 고립도(61세 이상 41.6%)가 OECD 평균(13.5%)보다 3배가량 높은 것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노인 뿐만이 아니다. 청년층도 위기다. 2021년 20대(56.8%)와 30대(40.6%)의 사망 원인 중 1위가 자살이다. 특히 20대 자살자는 2017년(16.5명)까지는 감소하다가 급격히 늘기 시작해 2021년 23.5명이 됐다. 지난 4년 사이 42.4%나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는 20대 우울증 환자와 불안장애 환자 증가와도 무관하지 않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대 우울증 환자는 2017~2021년 7만 8,016명에서 17만 7,166명으로 127.1%, 불안장애 환자도 5만 9,080명에서 11만 351명으로 비슷한 증가세를 보였다.
여가와 공동체 부분에서 만족도가 떨어지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플 때 집안일을 부탁할 경우’ 또는 ‘힘들 때 이야기할 상대가 필요한 경우’ 도움받을 수 있는 곳이 하나도 없는 사람의 비율을 보여주는 사회적 고립도는 2021년 기준 34.1%로 나타났다. 특히 60세 이상 인구의 사회적 고립도가 41.6%로 가장 높았다. 38개 OECD 회원국 중 삶의 만족도를 끌어내리는 주요 변수이다.
그 부를 일궜으면서도 국민 삶의 만족도는 떨어지는 원인이 나왔으니 처방이 필요해 보인다. 노벨 경제학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교수는 지난달 KBS와의 인터뷰 중에서 “치솟은 물가로 실질 임금이 줄어든 탓에 너무 많은 사람이 고통받고 있지만, 상품 가격 상승으로 이윤을 노린 기업들은 그렇지 않은 면이 있다”라고 지적했다. 누린 쪽에서 나눌 수 있어야 한다고 사회적 재분배 작업에 국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공공의료, 극빈층을 위한 교육과 소득지원 등이 국가가 해야 할 재분배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세계 석학이 한 말이지만 우리 한국의 역대 부자들이 대를 이어올 수 있었던 것도 사방 백 리에 굶는 사람이 없게 나눴고, 뒤주에 쌀을 넣고 필요한 사람 누구에게라도 가져갈 수 있게 한 주변 공동체에 대한 배려 덕분이었다. 부의 나눔이 수백 년 부를 누릴 수 있는 비결이었다. 국가도 다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