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재난안전뉴스 이계홍 기자 | 한국은 세계적으로 디지털 강국으로 널리 평가받아왔다. 그런데 지난 17일부터 사흘간 발생한 ‘지방행정전산망 장애’가 ‘디지털 정부’라는 명성을 추락시켰다.
전국의 행정전산망이 올스톱되면서 주민 불편과 함께 디지털 강국의 명성에 먹칠한 행정이 아닐 수 없다. 행정안전부(장관 이상민)는 20일 복구작업을 끝냈다고 하지만 여전히 신뢰를 주지 못해 이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강구할 때로 보여진다.
정부는 내년도 ‘디지털 플랫폼 정부’ 관련 사업 예산으로 7925억원을 편성했다. 역대 최대 규모 세수 결손이 예상되는데도 올해보다 209억원이 늘어났다. 지방교부세 예산을 제외한 행정안전부 예산 중 재난 안전 관련 예산에 이어 2번째로 많은 액수다. 이처럼 많은 예산이 책정된 것은 '디지털 정부'라는 영광을 이어가기 위해서이고, 주민 편의를 그만큼 도모하겠다는 의지로 보여진다.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디지털 플랫폼 정부’를 표방해왔다. 공공기관이 발급하는 민원서류는 행정기관을 방문할 필요 없이 온라인 발급이 가능하게 하고, 각 부처뿐 아니라 전국 지방자치단체의 공공데이터를 한곳에 모으는 ‘국가공유데이터플랫폼’, 데이터 기반 재난관리를 위해 유관기관의 재난 데이터를 한데 모으는 ‘재난안전데이터 공유플랫폼’도 구축하고 있는 중이다.
민원서비스가 전산화되고 각종 개인정보가 전자정보로 전환될수록 시스템 오류에 따른 혼란과 해킹 등으로 인한 개인정보 노출 위험이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고 있다. 이 같은 위험에 대한 대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 이번 사태를 통해 여실히 드러났다.
장애를 일으킨 ‘새올’ 시스템은 2005년 개발이 시작돼 2007년 보급됐다. 20년 가까이 지나도록 재구축 예산을 확보하지 못했다. 정부는 최근에서야 차세대지방행정공통전산망 구축을 위한 예비타당성조사에 나선 상태다.
정부는 지난해 10월 SK C&C 데이터센터 화재로 카카오톡 서비스 장애가 발생했을 당시 백업시스템을 갖추지 못했다고 카카오를 질타했고 ‘카카오 먹통 방지법’까지 만들었다. 그러나 정작 정부 전산망은 올해 들어서만 3차례 먹통이 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디지털 정부', '전자정부 시스템'은 그동안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런데도 올해 잇따라 발생한 전산망 오류가 발생했다. 필연적으로 관련 시스템의 안전성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정부 시스템은 인증관리를 이중화·이원화하도록 돼 있고, 네이버·카카오에도 요구한 만큼 강도 높게 정부 전산망 이중화가 돼 있는지를 심도있게 살펴봐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편 정부는 19일 오후 민·관 전문가 100여명을 투입해 복구 작업에 총력을 기울여 민원 서비스 먹통 사태를 진화했다. 행정전산망 마비 사태는 17일 오전 발생했다. 공무원 전용 전산망인 '새올 행정시스템'의 사용자 인증과정에 장애가 생기며 공무원 접속이 중단됐다.
현장에서 새올 시스템을 활용한 민원 서류발급이 멈춰서자 동 주민센터나 구청 민원실에서는 증명서를 발급받지 못해 발을 구르는 민원인들이 속출했다. 당일 점심시간을 넘어서는 오후에는 정부 온라인 민원서비스인 '정부24'마저 중단되며 온·오프라인 민원서비스가 모두 먹통이 됐다.
이로인해 세계 최고 수준의 '디지털 정부'로 평가받던 한국의 민원 행정 현장이 순식간에 혼란 상태에 빠져들었다. 주무 부처인 행안부는 '새올 시스템'의 서버와 네트워크 장비가 있는 국가정보자원관리원 대전센터에 민·관 전문가 수십명을 투입해 복구에 나섰으나 사태 당일 서비스 재개는 이뤄지지 않았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18일 관계부처 영상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국민께서 불편과 혼란을 겪으신 데 대해 송구하다"고 사과하고 빠른 복구를 지시했다. 뒤이어 미국 방문중인 윤석열 대통령도 빠른 시일내 전산망을 복구하라고 지시했다.
행안부는 곧바로 고기동 차관을 본부장으로 하는 '지방행정전산서비스 장애 대책본부'를 구성했다. 복구 인력도 수십명에서 100여명 늘려 시스템 정상화를 위해 부처 역량을 집중했다. 이 결과 18일 오전 '정부24' 서비스를 재개한 데 이어 19일 오후에는 새올 시스템 정상화를 발표하며 사흘간의 민원서비스 마비 사태가 종료됐음을 알렸다.
하지만 복구 인력은 사고 원인을 캐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뒤로 곧바로 원인이 공개됐던 과거 다른 전산사고와 달리 이번 행안부의 사고 원인 설명이 미비하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원인을 두고 추측이 무성했다. 이에따라 해킹 등 외부 소행이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다.
사고 원인조차 확실히 찾지 못하자 전산망 운영을 어떻게 하느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다. 행안부는 해킹과 관련해서는 정황이나 흔적이 나오지 않았다고 밝혔다.
정부는 민간전문가, 정부·지자체·관계기관이 참여하는 '지방행정전산서비스 개편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종합대책을 수립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원인을 알아야 해범도 나온다. 철저하게 원인을 캐 대책을 세워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