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꺼진 불도 다시 보자"...영덕 산불 재발화 교훈

2022.02.18 09:47:09 이계홍 기자 kdsn6@gmail.com

주불 정리보다 잔불 정리가 더 중요한 이유 

 

한국재난안전뉴스 이계홍 논설고문 | 봄의 길목에 예외없이 산불이라는 괴물이 나타나 잘 가꾼 산을 까맣게 태우고 말았다. 수십 년 잘 가꾼 아름드리 나무들이 불에 탄 모습을 지켜보는 마음은 착잡하다. 

 

연례행사가 되어버린 산불은 되살아난 잔불 때문에 더 큰 패해를 보고 있다. 이번 경북 영덕 산불이 대표적인 사례다. 

 

산림 당국과 소방 당국에 따르면, 영덕 산불은 15일 오전 4시경 영덕 지품면 삼화리 산에서 불이 나 같은 날 오후 5시경 일단 진화됐다. 그런데 밤 사이 불씨가 되살아나면서 16일 오전 2시 18분경 크게 번졌다. 이 불은 강풍을 타고 영덕읍 지품면과 인접한 화천리, 화수리 일대로 번져 17일 오후에야 진화됐다. 

 

불은 최대 500m 폭으로 약 3㎞에 이르는 불띠를 이루었으며, 순간 풍속이 초속 12m로 강한 바람이 불어 크게 번졌다. 이렇게 해서 축구장 560개 면적(약 400ha)의 산을 깡그리 태우고 말았다. 

 

산림당국과 소방당국은 재차 번진 산불을 끄기 위해 16일 밤부터 17일까지 헬기 40대와 인력 2천700여 명을 현장 투입했다. 산림 당국은 최근 10년래 단일 산불에 헬기 40대가 투입된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공중진화대, 산불특수진화대 등 역대급 인력을 동원해 방화선을 구축했다.  

 

화재 원인은 지품면 야산 전신주에서 농업용 반사필름이 불에 탄 채 발견돼 반사필름이 전신주에 날아가 불꽃이 일어나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초기 산불 진압에 실패한 것은 산불전문요원·헬기 등 초기진화에 필요한 기동성있는 인력·장비가 부족한 데 원인이 크다. 험난한 지형을 파고들 수 없는 한계도 있다. 

 

그러나 보다 큰 문제는 주불보다 잔불과 뒷불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데 있다. 꺼진 불도 다시 보자는 교훈을 망각한 것이 이런 참사를 가져왔다. 봄철이면 동해안은 서풍이 강하게 불고 산이 바짝 말라있기 때문에 이때 낙엽이 쌓인 산골짜기나 능선에서 산불이 났다하면 마른 짚덤불에 불이 붙은 듯 걷잡을 수 없이 번지게 된다. 건조한 날씨에 바람이 드센 데 따른 자연현상이지만, 사람의 부주의 등이 이런 참화를 가져온다.   

 

산불은 대개 잔불을 마저 정리하지 못한 데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잔불 문제는 사람이 하는 일인데, 방심한 사이 걷잡을 수 없이 화마가 덮치는 셈이다.  

 

산불은 일반 화재와는 달리 고온으로 접근 자체가 어렵고 신속한 방화벽을 만들지 않으면 초기진화가 어렵다. 따라서 장비현대화와 함께 전문인력확보가 시급한 과제다. 그런 가운데 장비·인력부족으로 지역 공무원, 주민들까지 나서 갈쿠리 등 기초장비로 산불을 간신히 잡고 하산했는데, 밤을 틈타 잔불이 되살아나 더큰 산불로 번졌을 때는 사람들이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다. 

 

잔불 하나 정리하지 못한 것이 이렇게 막대한 물적 피해와 주불 진압의 수고까지 밟아버린 셈이니 심리적으로 패닉상태에 빠지게 된다. 잔불은 대개 인적이 물러난 밤에 일어나는 것이어서 속수무책이다.   

 

잔불정리는 헬기를 이용해 공중 살수를 하는 것으로 시작해 그후 인력들이 화재현장에 투입돼 불씨를 하나하나 제거하는 것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땅속에 있는 불씨까지 완전히 진화해야 잔불을 껐다고 할 수 있다. 토사 밑이나 바위틈에 불이 붙은 나뭇가지나 낙엽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다면 밤에 강풍이 불씨를 살려 다시 크게 번지게 되는 경우가 많다. 

 

장비 부족 등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많지만 조금만 신경을 쓰면 큰 사고를 막을 수 있는 것이 잔불이다. 크게 번지는 산불을 일단 잡으면, 잔불을 정리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방심이 화를 자초한다.

 

산불은 주불을 진화했다고 해서 끝난 것이 아니다. 땅속에 있는 불까지 수습해야만, 완전 진화했다고 봐야 한다. 화재진압 요원이 별도로 조를 짜 밤깊을 때까지 감시하는 비상체제를 갖추어야 한다. 따라서 이번 재차 발화는 인재이므로 그에 대한 책임도 따라야 한다. 매번 겪는 일을 또다시 겪었다는 무사안일주의가 문제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산림당국과 소방당국은 물론 산불이 발생된 지역 주민들, 그 주변에 사는 지역 주민들은 초기 산불을 잡았다는 데 안도하지 말고, 잔불 정리를 마무리해야 진화했다고 봐야 한다. 꺼진 불도 다시 보자는 말은 거저 나온 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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