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재난안전뉴스 이계홍 논설고문 |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산업재해가 일어났을 때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하거나 6개월 이상의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 발생했을 때, 혹은 동일한 유해 요인으로 발생하는 직업성 질병자가 1년에 3명 이상 발생한 경우, 안전조치를 소홀히 한 사업주나 경영자에게 1년 이상의 징역형을 처벌하도록 하는 법안이다. 공사금액이 50억원을 넘어가는 공사 현장도 법 적용 대상 사업장이 된다.
중대재해처벌법은 또 상시근로자 50인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우선 적용된다. 이는 그동안 얼마나 법이 안지켜지고, 인명·재난 사고가 줄지 않았으면 이런 법이 나왔을까를 되돌아보게 한다.
법 시행을 목전에 두고도 여전히 30%가 넘는 사업장이 산재사고 발생 위험이 있다고 한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7월부터 올해 1월까지 건설·제조업 등 사업장을 대상으로 13차례 진행한 현장점검 결과, 27524곳 중 63%에 달하는 17335곳에서 기본 안전수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달에만 점검 사업장 1100곳 중 절반이 넘는 617곳(56.1%)이 안전수칙 미이행으로 지적됐다.
지난해 9월과 10월 추락과 끼임 예방조치, 개인보호구 착용 등 3대 안전조치를 다수 위반하거나 주말·휴일 작업 등 사망사고 발생 위험이 높은 사업장을 대상으로 집중단속했을 때, 2665곳 중 882곳(33.1%)에서 위반사항이 적발됐다.
이달 진행한 현장점검 사업장 중 공사금액 10억원 이상 규모의 건설업 475곳 중 246곳(51.8%)이 적발됐다. 50인 이상 제조업 사업장 665곳 중 216곳(39.8%)이 위험사업장으로 나타났다.
이런 상황이라면, 중대재해처벌법이 강행되어도 실효를 거두기는 어렵다. 3D업종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 과연 효력이 있을까.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건설업 현장은 지금 난리도 아니라고 한다. 광주 서구 주상복합 아파트 붕괴사고가 더 불을 질렀다. 그래서 지금까지 하지 않던 콘크리트 타설 양생작업장에 지자체에서 점검을 나오기도 한다고 한다.
지자체, 소방청, 고용노동부, 경찰청, 여기에 본사에서 압박이 계속 이어져 현장 안전관리 업무자들이 넋을 빼고 있다고 한다. 문제가 생기면 너도나도 벌떼처럼 달려드는 과잉 점검으로 업무가 마비될 정도라는 것. 단속반이나 점검반은 일단 안전요원을 범인시 하는 시선도 못견딜 지경이라고 한다.
이런 벼락치기 단속이 일회성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이래 가지고는 반감만 살 뿐, 안전을 도모할 수 없다. 기왕 중대재해처벌법이 발효된 마당이라면, 보다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운영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점검을 나가보니 기본적인 안전난간 미설치, 철근 전도방지 조치 미흡 등 유해·위험사항들이 곳곳에서 발견되었다. 미리 점검하지 않아서 생긴 일이니, 이는 감리기관이나 점검반의 직무유기다.
재난안전 사고는 하나가 잘못되면 연쇄적으로 다른 곳으로 퍼져나가는 속성이 있다. 눈에 보이는 곳은 쉽게 노출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문제가 발생하면 사고가 연쇄적으로 나서야 발견되는 것이니, 조금만 유의하면 시정할 수 있는데 못한 것들이 많다.
철근을 끌어올리는 양중작업이 불안정해지는데도 사고가 나지 않더라는 관성에 젖어 일을 계속한다. 빨리 일을 끝내기 위해 서두르다 보니 위험이 노출된다. 이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광주 화정동 주상복합 아파트 붕괴사고가 났다. 작은 안전수칙 하나 지키지 못한 것이 이처럼 연쇄적인 안전사고 위험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대처하는 방법을 전문가 집단의 의견을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디테일에 강해야 한다. 눈에 보이지 않은 구석일수록 안전점검에 철저해야 한다. 작은 사고일지라도 스스로 점검하고 개선하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
둘째,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 중 위험이 높은 사업장 리스트를 뽑아 밀착 관리할 필요가 있다.
셋째, 중대재해처벌법이 현장에 잘 안착할 수 있도록 꾸준히 컨설팅을 병행해야 한다. 법은 까다롭고 사람 목을 조인다는 압박감이 있어서 법망을 요리저리 피하려는 습성이 있다. 그러나 실천하지 않으면 불이익이라는 것을 주지시킬 필요가 있다.
넷째, 공사기간 확보, 공사금액 확보, 관리자와 근로자의 안전의식 개선이 필요하다. 관리자는 고용주의 재산 보호를 위해 최소의 돈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는다는 책임감이 있다. 그 말은 법에 어긋나지 않을만큼만 시설을 설치하면 된다는 태도로 바뀔 수 있다. 그래서 100이 들어갈 것을 80 정도 넣고 고용주의 이익이 돌아가게 한다. 100을 넣어야 하는데도 110을 넣는다는 고용주의 발상이 필요하다. 그것이 결과적으로 이익이더라는 기업가 정신이다. 100에서 20을 뻬먹으려다 패가망신하는 예가 비일비재한 것이 비극의 원친이다.
다섯째, 교육 시스템 구축이다. 작은 훈련에서부터 안전 용구도 스스로 점검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대개 자가 관리는 형식적이다. 따라서 안전관리전문가가 관리할 필요가 있다. .
여섯째, 안전점검반이 안전위험 시 공사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중대재해처벌법에 이 항목이 들어가 있지만 실제로 기능할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작업 중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관리자에게 작업 중단을 통보하고 위험요인을 제거한 후 작업을 재개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는 올해부터 그 실효성을 높이고 거부권을 행사토록 제도를 실제화해야 한다.
일곱째, 경영의 최우선 가치를 ‘생명’에 두고 노동자의 안전과 생명 보호를 위해 안전사고 매뉴얼을 일상적으로 활용하도록 한다.
사업장 안전·보건관리 의무이행 사항에 대한 조치방안, 위기관리 업무처리절차 이행계획, 중대재해예방 이행 실적 보고, 도급사업 안전강화 적용 방안 수립, 위험작업 거부권 도입과 중대재해처벌법 전담조직과 인력을 확충하는 등 준비를 다진다.
여덟째, 선진국 사례도 살펴야 한다. 대부분의 선진국은 처벌보다 예방에 집중한다. 실제 영국과 싱가포르는 산업안전정책을 기업의 자율관리 방식으로 전환해 사고 사망자 발생률을 낮추고 있다
경총(경영자총협회)은 "중대재해처벌법 등 입법의 목적이 궁극적으로 산재 감소임에도 사업주 처벌 강화가 위주가 되었다“고 아쉬워하면서 ”처벌강화만이 사고사망자 감소로 이어지지는 않는다"고 했다. 따라서 처벌중심으로만 대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를 지적하기 전에 기업주나 고용주는 예방중심의 산업안전 문화에 천착했나를 살펴보아야 한다. 이윤추구에만 매달려 안전 추구는 등한시한 채 속도감만 강조되는 실적주의 우선을 내세우지 않았나 돌아보아야 한다.
아홉째, 근본으로 돌아가 중대재해처벌법이 왜 나왔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우리나라가 재난안전 사고가 세계 톱클래스라는 것이 이런 처벌법이 나온 배경이 아니겠는가. 글로벌 스탠다드의 기본은 공사를 벼락치기로 몰아붙여 임금을 절약하고,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태도가 아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안전 위주의 공사를 하는 것이 체질회되었다.
광주 화정동 주상복합 붕괴사고도 큰 틀에서 보면 안전은 도외시한 채 속전속결 작업 지시에 무대뽀로 공사를 강행한 결과가 아니겠는가. 따라서 기업주의 생명 중시 철학이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