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재난안전뉴스 이계홍 기자 | 의협이 내분 조짐을 보이고 있다. 강경파로 알려진 임현택 차기회장이 비대위원장을 직접 맡겠다고 나서면서 강경 모드로 돌아서는 것 아니냐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전공의 대표의 만남 후 조금씩 '의정 대화'의 실마리가 엿보이는 듯싶었지만, 강경파인 차기 대한의사협회(의협) 회장이 목소리를 내면서 심상찮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8일 의료계에 따르면 임현택 제42대 의협 회장 당선인이 다음 달 1일 취임을 앞둔 가운데, 회장직 인수위원회가 이날 의협 비상대책위원회와 대의원회에 공문을 보냈다.
임 당선인이 의협 비대위원장직을 수행할 수 있도록 협조해달라고 요청하는 공문이었다. 의협은 지난 2월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이 발표된 후 비대위 체제로 전환했고, 현 비대위는 김택우 비대위원장이 이끌고 있다.
임 당선인은 지난달 말 회장 선거 직후 김 위원장과 공동으로 비대위원장을 수행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으나,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회장직 인수위는 공문에서 "의도와는 달리 비대위 운영 과정에서 당선인의 뜻과 배치되는 의사 결정과 대외 의견 표명이 여러 차례 이뤄졌고, 이로 인한 극심한 내외의 혼선이 발생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혼선을 정리하기 위해 다원화된 창구를 의협으로 단일화해 조직을 재정비해야 한다"며 임 당선인의 비대위원장직 수행을 촉구했다.
이는 지난 4일 윤 대통령과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대위원장의 만남 후 의정 대화가 본격적으로 추진되면서 정부와 타협을 모색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에 대한 비판으로 읽힌다.
임 당선인은 연합뉴스에 "중요한 시기에 저와 합치된 의견이 나갈 줄 알았는데, 제 의사에 반하는 일이 여러 차례 있었다"며 "일일이 열거하긴 어렵지만 비대위에서 의대 증원과 관련해 '1년 유예안'을 제안했다거나 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질타했다.
앞서 김성근 의협 비대위 언론홍보위원장은 KBS 라디오에 출연해 "(의대 증원을) 1년 미루고 이걸 정확히 검토할 수 있는 위원회 같은 걸 구성한 뒤, 여기서 결론이 나면 그 결론을 따라가자"고 제안했다.
임 당선인은 의대 증원과 관련해 '강경파'로 분류되는데, "저출생으로 인해 정원을 500명∼1천명 줄여야 한다"는 정원 감축론까지 내세운다.
윤 대통령과 박단 대전협 비대위원장의 만남을 "의미 있다"고 보는 의협 비대위와 달리, 임 당선인은 SNS에 '내부의 적' 운운하며 박단 위원장을 강도 높게 비난하는 듯한 글을 올리기도 했다.
임 당선인은 의료계가 단일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면서 그 중심에는 의협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제가 친정 체제를 구축해 비대위를 전면 재구성해 단일한 목소리를 내겠다"며 "중구난방으로 목소리를 내는 그런 일은 더 이상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임 당선인이 이처럼 강력하게 목소리를 내면서, 조심스레 타진되던 의정 대화도 쉽지 않은 난관을 만난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다.비대위원장이 임 당선인으로 교체될 경우, 전날 의협 비대위가 예고한 의료계 단체의 합동 기자회견이 무산될 가능성도 있다.
의협 비대위는 총선 후 대전협,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협회(의대협) 등과 함께 정부의 의대 증원 추진과 관련된 합동 기자회견을 열겠다고 밝혔다.
의협 비대위가 전공의, 교수단체, 의대생과 '공동대응 전선'을 꾸리면서 정부와의 소통도 일원화하고, 의정 대화에도 속도가 붙는 것 아니냐는 기대가 생겼었다. 임 당선인은 "(합동 기자회견은 당선인과) 합의된 게 아니었다"며 "의협과의 협의 없이 다른 목소리를 내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