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재난안전뉴스 이계홍 기자 | 중동전쟁 확전이냐 수습이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는 7월 31일(현지시간) 긴급회의를 열어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최고 정치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야의 암살과 관련해 논의한다. 유엔은 이날 오후 4시 유엔본부에서 팔레스타인 문제를 포함한 중동 상황을 의제로 안보리 회의가 열린다고 밝혔다.
이날 회의는 이란이 안보리 긴급회의 개최를 요구하고 이달 의장국인 러시아를 비롯해 중국과 알제리가 이를 지지하면서 소집됐다. 아미르 사에이드 이라바니 주유엔 이란대사는 회의 소집요청 서한에서 "이스라엘이 갈등을 고조하고 전쟁을 지역 전체로 확대시키려 한다"며 "국제사회가 이 같은 폭력 행위에 단호히 대처하고 가해자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이에 앞서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정치국 최고지도자인 이스마일 하니야(62)가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31일 오전(현지 시간) 암살됐다. 이란과 하마스는 이스라엘을 배후로 지목한 가운데 지난해 10월 발발한 ‘가자전쟁’의 주도자 중 한 명으로 여겨져 왔고, 최근에는 휴전 협상에도 관여해 온 하니야가 사망하면서 중동 내 확전 가능성이 커졌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란 국영 IRNA통신에 따르면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는 성명을 통해 “범죄자이며 테러리스트인 시온주의 정권(이스라엘)이 (하니야를 암살해) 가혹한 징벌을 자초했다”고 밝혔다. 하마스도 이스라엘이 하니야를 암살했다며 보복을 천명했다.
하니야는 전날 마수드 페제슈키안 신임 이란 대통령의 취임식에 참석하기 위해 테헤란을 방문했다. 이스라엘은 관련 논평을 내놓지 않았지만 외신과 전문가들은 이스라엘 소행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이스라엘군은 지난달 30일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남부 교외지역을 공습해 친이란 시아파 무장단체 헤즈볼라의 고위급 지휘관이며 대이스라엘 공격을 주도해 온 푸아드 슈크르를 제거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헤즈볼라는 슈크르의 사망 여부를 밝히지 않고 있다.
이란은 자국 수도 한복판에서, 그것도 신임 대통령 취임식 참석 직후 하니야가 암살당한 것에 분노하고 있다. 신정일치 국가 체제인 이란은 하니야가 암살당하기 불과 몇 시간 전까지 하메네이와 회동했던 것에도 큰 충격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중동에서 패권을 지향하는 자국 위상에 큰 타격일 뿐 아니라 심각한 안보 위협에 노출돼 있다는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하니야의 사망으로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가자지구 전쟁 휴전을 위한 협상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니야는 하마스 군사지도자 야흐야 신와르 등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온건, 실용주의 성향인 것으로 분류됐기 때문이다. 로이터통신은 “하니야는 ‘하마스 외교 정책의 얼굴’이었다”며 휴전이 어려워졌다고 평했다. 알자지라방송은 하니야 암살을 통해 이스라엘이 전쟁을 계속하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분석했다.
이스라엘이 지난달 30일 헤즈볼라의 핵심 군 지휘자로 대(對)이스라엘 공격을 주도해온 푸아드 슈크르 암살을 위해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남부 교외지역을 직접 공격하면서 확전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스라엘군은 슈크르가 사망했다고 주장했지만, 헤즈볼라는 사망 여부를 밝히지 않고 있다.
이스라엘의 이번 공격은 최근 헤즈볼라가 감행한 것으로 추정되는 골란고원(이스라엘 점령지)에 대한 공격으로 어린이 12명이 사망한 것에 따른 보복이다. 당초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은 하마스보다 군사력과 무기 수준이 월등한 헤즈볼라와 이스라엘 간 전면전을 우려해 왔다.
일각에선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극우 연정을 유지하기 위해 휴전보다 전쟁 지속을 선호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부패 등 개인 비리로 이스라엘 현직 총리 최초로 형사 재판을 받고 있는 네타냐후는 ‘전쟁 상황’ 유지를 통해 자국 내 반대파의 반발을 제압하고, 자신의 정치 생명을 연장하려고 한다.
한편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이날 스테판 뒤자리크 대변인을 통해 성명을 내고 "베이루트 남부 및 테헤란에서 발생한 공격은 모든 노력이 가자지구의 휴전과 인질 석방, 인도주의 지원 강화, 레바논 접경지역 평화 회복을 위해 쏟아져야 할 시점에서 확전 위험이 고조되고 있음을 시사한다"며 당사국들에 최고 수준의 자제를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