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재난안전뉴스 박종열 기자 |
고층아파트에서 창문 바깥에 에어컨 실외기를 설치하거나 수리하다가 추락해 사망하는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2020년 개정된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은 공동주택에 냉방설비 배기장치(실외기) 설치 공간을 확보하도록 했다.
그런데 실외기 추락 사고가 잇따르자 정부는 2021년부터 베란다 같은 아파트 내부에 실외기실을 설치하는 경우 일정 면적을 바닥 면적에서 제외하도록 제도를 개선했다. 건설사들이 외벽 난간 대신 실내형 실외기실을 적극 설계해 추락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였다.
최근 신축 아파트는 대부분 실외기실이 따로 마련돼 있다. 입주자 임의로 외벽에 추가 설치하는 것은 관리규약이나 건축물 외관 규정에도 위반될 수 있다.
그러나 오래된 아파트들은 여전히 창밖에 실외기가 설치돼 있다. 이를 창문 안으로 옮기는 건 비용도 많이 드는 큰 공사일 뿐아니라 베란다 공간도 마땅치 않다.
창밖 에어컨 설치는 설치 및 수리 기사 추락사 외에도 △실외기 낙하 사고, △태풍 시 파손 위험, △도시 미관 저해, △소음 민원 등도 야기할 수 있다.
40년이나 된 부산의 한 노후 아파트 11층에서 에어컨 실외기를 설치하던 40대 작업자 2명이 추락해 숨지는 안타까운 사고가 또 발생했다.
9일 낮 12시 22분쯤 부산 사상구 주례동의 한 아파트에서 에어컨 실외기 설치 작업을 하던 두 명이 지상으로 추락해 숨졌다.
한 명이 베란다 난간에 몸을 기댄 채 작업하다가 노후화된 난간이 체중을 견디지 못하고 부러졌다. 작업자는 난간과 함께 먼저 추락했고, 안에서 돕던 다른 사람은 떨어지는 작업자 손을 붙잡으려다 함께 아래로 떨어지고 말았다.
먼저 추락한 사람은 종업원이고, 이를 붙잡으려다 함께 추락한 사람은 에어컨 설치업체 대표인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업체는 1인 사업장으로 추정된다. 숨진 종업원이 상시 근로자인지, 일용직 형태로 고용된 인력인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실외기 추락사 왜 반복되나
실외기 추락사의 근본 원인은 ‘창밖 설치 자체’보다도 실외기 교체·수리 과정에서 작업자가 외벽 쪽으로 몸을 내밀어 작업하는 자세에 있다. 대부분 낡은 난간이나 거치 구조물이 사람 몸무게를 못 견뎌 무너지면서 작업자와 함께 떨어진다.
2024년 10월에는 경기 안양시의 한 아파트 8층에서 에어컨 실외기를 해체하던 이삿짐센터 근로자 2명이 추락해 50대 작업자는 숨졌고 60대 작업자는 중상을 입었다. 작업자들은 부산 사고처럼 실외기가 설치된 난간과 함께 떨어졌다.
2020년 경기 광명시 한 상가주택 4층에서 외벽 발코니에 실외기 거치대를 설치한 뒤 실외기를 옮기던 근로자도 발코니 구조물과 함께 추락해 사망했다. .
2016년 서울 월계동 빌라 3층에서는 가전 서비스 기사가 혼자 안전장치 없이 실외기를 점검하다가 난간과 실외기가 함께 떨어지면서 추락해 숨졌다.
고용노동부는 2022년 여름 위험경보를 발령하면서 “2017~2021년 5년간 에어컨 설치·수리 작업 중 발생한 사망사고 8건이 모두 추락사고였다”고 밝혔다.
실외기 관련 추락 사고가 반복되는 이유는 단순히 작업자의 부주의 때문은 아니다.
무엇보다 노후된 난간이 가장 큰 발생 요인이다. 오래된 아파트의 알루미늄이나 철제 난간은 용접 부위가 부식되었거나 콘크리트와의 결합력이 약하다. 작업자가 이를 확인하지 않고 몸을 기대거나 지지대로 삼을 경우 난간이 통째로 무너지면서 작업자도 함께 추락할 수 있다.
안전줄을 걸 곳이 없는 것도 문제다. 아파트 가정집 내부에는 작업자의 하중을 견뎌줄 만한 단단한 안전대 걸이(설치용 앵커)가 마땅치 않다. 작업자가 안전 확보를 위해 난간이나 외벽에 고정 장치를 설치하려 하면, 벽면이나 페인트가 훼손된다며 일부 고객들이 항의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기사들이 위축되어 안전장치 없이 무리하게 작업에 들어가사고를 당하곤 한다. 실외기는 보통 30~60kg에 달해 균형을 잃기 쉬운데도 혼자 작업하는 경우가 많다.
또 여름철에 수요가 폭증하므로 대형 가전사나 외주 업체 소속 기사들이 하루에 많게는 5~6건의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 작업량에 따라 수입이 결정되는 구조다 보니, 안전줄을 단단히 고정하고 안전 장구를 꼼꼼히 착용하는 시간조차 생략하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실외기는 대형 가전 브랜드의 이름을 걸고 판매되지만, 실제 설치는 재하청을 받은 개인 사업자(지입 기사)나 영세 업체가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체계적인 현장 안전 감독이나 2인 1조 작업 수칙이 서류상으로만 존재하고 현장에서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것도 문제다.
산업안전 전문가 김기석(54)씨는 “에어컨 실외기 작업은 단순 가전 설치가 아니라 고소 작업으로 봐야 한다”며 “이런 후진적 안전 사고가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에 대해 에어컨 판매업체와 제조사들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