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보다 3배 더 죽는 농업인 사고”.. 재난관점서 손본다

농업 분야 사망률, 전체 산업재해의 3.1배.. 농작업 사망자 59%는 농기계 사고
고령농·여성농·외국인노동자 맞춤형 대책 추진.. 경운기·파쇄기 안전장치 강화
농작업안전재해예방법 제정 검토.. 보험 중심에서 예방 중심 안전관리로 전환

 

한국재난안전뉴스 박광춘 기자 |

 

농촌의 고령화와 농기계 사용 확대가 맞물리면서 농작업 사고가 더 이상 개인 부주의나 현장 관행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관리해야 할 ‘농촌형 안전재난’으로 떠오르고 있다. 농업 분야 사망률이 전체 산업재해의 3배를 웃돌고, 농작업 사망자 10명 중 6명가량이 농기계 사고로 숨지는 것으로 나타나자 정부가 농림 분야 안전관리 체계를 전면 손보기로 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5일 농촌진흥청, 산림청 등 관계기관과 함께 ‘농림분야 안전관리 종합대책’을 발표했는데, 이번 대책의 핵심은 농업인과 임업인의 사망와 부상을 줄이는 한편, 농작업 현장을 보다 안전한 일터로 바꾸기 위한 예방적 차원의 조치이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2024년 농업인안전보험 기준 농업 분야 재해율은 5.00%로, 산재보험 기준 전체 산업재해율 0.67%의 약 7.5배에 달했다. 사망만인율도 농업 분야는 2.99명으로 전체 산업 평균 0.98명의 3.1배 수준이었다. 산업현장보다 농촌 일터에서 다치거나 숨질 위험이 훨씬 크다는 의미다.

 

농업인 사망 사고의 가장 큰 원인은 농기계였다. 작년 농작업 중 숨진 농업인 297명 가운데 174명, 59%가 농기계 사고로 사망했다. 낙상 사고는 55명으로 20%를 차지했다. 농기계 사고 중에서는 경운기 사고가 74명으로 가장 많았고, 트랙터 사고가 20명으로 뒤를 이었다. 특히 빠른 고령화 속에 어르신 안전사고도 적지 않다. 

 

고령화·기계화 겹친 농촌…사고 나면 중대재해로

정부가 이번 대책을 내놓은 배경에는 농촌의 빠른 고령화가 있다. 60대 이상 농업 취업자 비중은 2020년 70.0%에서 2024년 75.5%로 높아졌다. 여기에 논농사 기계화율은 99.7%에 달한다. 고령 농업인이 경운기, 트랙터, 운반차, 파쇄기 등을 직접 다루는 일이 일상화되면서 작은 조작 실수나 돌발 상황도 치명적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그동안 정부는 농작업 안전재해 예방 계획을 세우고 관련 대책을 추진해왔지만, 농촌진흥청과 산림청 등 기관별로 나뉘어 진행돼 현장 재해율을 실질적으로 낮추는 데 한계가 있었다. 농식품부는 이번 대책에서 “국가가 책임지는 안전한 일터, 건강한 농업인과 함께 잘사는 대한민국”을 비전으로 내걸고, 농기계와 농업시설, 취약계층, 안전문화, 제도 기반을 함께 손보기로 했다.

 

이를위해 정부는 우선 오는 2030년까지 농작업 사망·부상자율을 2024년보다 25% 낮추기로 했다. 사망자는 297명에서 220명으로, 부상자는 5만852명에서 3만8,152명 수준으로 줄인다는 계획이다.

 

경운기·트랙터 안전장치 강화…사고 나면 119 자동연계

농기계 사고를 줄이기 위한 대책도 강화된다. 정부는 농기계 전도·전복 사고 피해를 줄이기 위해 안전구조물 의무 설치 대상 농기계를 기존 4종에서 6종으로 확대키로 했다. 현재는 트랙터, 운반차, 로더, 승용제초기가 대상이지만, 앞으로 지게차와 굴착기도 포함시킬 예정이다.

 

승용형 농기계의 안전벨트 미착용을 막기 위한 경보장치 설치도 의무화된다. 안전벨트를 매지 않으면 90초 동안 경보음이 울리도록 하는 방식으로, 일반 승용차처럼 한다는 계획이다. 농기계 사고가 발생하면 사고감지 단말기가 119 시스템과 자동으로 연계되는 체계도 시범 운영된다. 전남, 강원, 경북 소방본부와 연계해 사고감지 단말기 1,297대를 설치하는 방식이다.

 

야간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해 농기계 반사판 기준도 자동차 수준으로 높인다. 기존에는 직경 6.6㎝ 이상 적색 반사기를 설치하면 됐지만, 앞으로는 자동차 안전기준에 맞춘 길이 14㎝ 이상 후부 반사판이나 반사지도 추가로 설치하도록 할 계획이다.

 

사고가 잦은 경운기 대책도 포함됐다. 정부는 고령 농업인이 보유한 노후 경운기의 폐차를 유도하고, 기존 보행형 운전대를 핸들형으로 개조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기로 했다. 농촌 현장에서 경운기가 밭갈이뿐 아니라 짐을 싣고 이동하는 수단으로 널리 쓰이는 현실을 반영한 조치다.

 

축사 질식·지붕 추락·저수지 사고도 관리 대상

농업시설 안전관리도 강화된다. 양돈장 슬러리피트, 집수조, 분뇨처리시설 등에서는 질식사고 위험이 큰 만큼 한돈협회와 협업해 환기팬, 덕트, 송기 마스크 등 안전장비 공동구매를 지원하고, 정기 점검 체계를 마련키로 했다.

 

축사시설현대화 사업 대상자에게는 안전난간과 표지판 설치 등 추락·질식사고 예방 조치를 의무화한다. 폭염과 폭설에 대비해 환기팬, 채광창 덮개 등 안전시설 설치를 지원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고용노동부와 협업해 지붕 추락사고 예방을 위한 추락방호망, 안전매트 설치 비용도 지원한다.

 

산지유통센터와 미곡종합처리장 등 농산물 유통시설은 안전점검 결과에 따라 개보수 자금 지원에서 인센티브나 페널티를 부여하기로 했다. 형식적 점검에 그치지 않도록 실효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저수지와 용배수로 주변의 추락사고를 막기 위해 안전펜스, 난간, 위험안내판, 야간조명 등도 설치된다. 소규모 저수지도 긴급시설물 점검 대상에 포함해 홍수기 누수 위험 등에 대비할 계획이다.

 

고령농·여성농·외국인노동자 맞춤형 안전관리

취약계층을 위한 안전대책도 별도로 마련됐다. 고령농의 경우 폭염 시기 온열질환을 막기 위해 선도농업인과 연계한 현장 밀착 관리를 실시한다. 질병 조기 발견을 위한 왕진버스 사업은 2025년 264개소, 7만5,000명에서 2026년 353개소, 8만4,000명으로 확대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여성농업인을 위한 대책도 포함됐다. 쪼그려 앉는 자세 등 특정 자세를 오래 반복하는 작업이 많아 근골격계와 심혈관계, 비뇨기 질환 위험이 크다는 점을 고려해 특수건강검진 대상 연령을 기존 51∼70세에서 51∼80세로 완화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들녘 공동화장실 설치도 지원하고, 여성 친화형 농기계도 추가 개발한다.

 

외국인노동자 안전관리도 강화된다. 계절노동자 비자 신청 때 외국인노동자와 농가가 안전 체크리스트를 제출하도록 의무화하고, 안전 취약 농가는 농작업안전관리단을 통해 교육과 지도를 받도록 한다. 축산 분야 고용허가제 외국인노동자에게는 축산단체와 협력해 추가 안전교육을 실시하고, 태국어, 베트남어, 네팔어 등 9개 국어로 된 동영상과 리플릿, 카드뉴스를 제작한다.

 

보험 중심에서 예방 중심으로…새 법 제정 추진

정부는 농림 분야 안전관리의 법적 기반도 강화할 예정이다. 현재 보험 중심으로 운영되는 농어업인안전보험법을 분리해 가칭 ‘농작업안전재해예방법’을 제정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사고가 난 뒤 보상하는 수준을 넘어 사고 자체를 줄이는 예방 중심 체계로 바꾸겠다는 의미다.

 

농업인안전보험도 산재보험 수준으로 높인다. 정부는 2028년까지 현행 상품을 보장 수준이 높은 상품으로 단계적으로 통합하고, 안전사고가 발생할 때 고용 농업인의 배상책임을 면제하는 규정도 검토키로 했다.

 

통계 관리도 정비된다. 정부는 올해 농작업 사망재해통계를 국가승인통계로 관리하고, 2028년까지 비사망 재해통계도 정보 수집체계를 정비해 국가승인통계화할 계획이다. 농업재해가 산재 통계에 제대로 잡히지 않는 사각지대를 줄이려는 조치다. 실제로 농업인안전보험 기준 사망자는 산재 통계상 농업 사망자보다 훨씬 많아, 농업재해 통계의 공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이어져 왔다.

 

송미령 농식품부 장관은 “농림업인 재해를 최소화하고, 안전한 농작업장 환경 조성을 위해 즉시 시행 가능한 과제부터 우선 추진해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종합대책에 대한 지속적인 개선과 점검을 통해 농업인과 임업인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나가겠다”고 말했다.

 

그간 농촌의 사고는 관행적으로 특정 매뉴얼이나 규정에 거의 의존하지 않고, 개인의 숙련도나 경험에 의존해온 게 대부분이다. 하지만, 급속한 고령화 속에 농기계와 축사, 산림작업, 폭염, 외국인노동자 문제가 동시에 얽히면서 농작업 사고는 더 이상 일부 농가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안전망의 빈틈이 된 게 사실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안전 정책 시행을 계기로, 정부 대책이 실제 현장에서 작동하려면 장비 보급과 교육 확대를 넘어, 고령 농업인이 혼자 위험한 작업을 떠맡지 않도록 하는 지역 단위 안전관리 체계까지 함께 갖춰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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