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재난안전뉴스 박광춘 기자 |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한동안 수면 아래로 내려간 듯했던 감염병 공포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이번에는 호흡기 바이러스가 아니라 설치류 매개 감염병으로 알려진 한타바이러스다. 네덜란드 선적 크루즈선 MV 혼디우스(MV Hondius)에서 한타바이러스 집단 감염이 발생해 승객 3명이 숨지고, 여러 명의 확진·의심 환자가 보고되면서 세계 보건당국이 긴장하고 있다.
9일 세계보건기구(WHO)와 주요 외신 등에 따르면, 이번 사태는 지난 2일 영국 국제보건규칙(IHR) 연락창구를 통해 처음 보고됐다. 당시 선내에서는 중증 호흡기 질환자가 잇따라 발생했고, 4일 기준 7명의 확진·의심 사례와 3명의 사망자가 확인됐다. 이후 WHO는 7일 “현재까지 8건의 사례가 보고됐고, 이 가운데 5건이 한타바이러스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번 바이러스는 남미에서 주로 확인되는 안데스 바이러스(Andes virus)로 파악됐는데, 안데스 바이러스는 한타바이러스 계열 가운데 드물게 사람 간 제한적 전파가 보고된 종이다. 일반적인 한타바이러스는 감염된 설치류의 소변, 대변, 침 등에 오염된 먼지를 흡입할 때 감염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안데스 바이러스는 밀접하고 장시간 접촉한 사람 사이에서도 전파 가능성이 제기됐는데, 현재까지만 크루즈선 안에서 사람 간 전염이 이뤄진 것으로 추정될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 WHO도 “안데스 바이러스는 사람 간 제한적 전파가 가능한 것으로 알려진 유일한 한타바이러스 종”이라면서 그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사태가 조금 수습국면에 접어드는 모습이지만 여전히 불안감은 가라않고 있다.
크루즈선 감염.. 현재까지 상황은
MV 혼디우스호는 지난달 1일 아르헨티나 우수아이아를 출항했다. 이후 남극, 사우스조지아, 트리스탄다쿠냐, 세인트헬레나, 어센션섬 등을 거치는 남대서양 항로를 운항했다. WHO에 따르면 선박에는 승객 88명과 승무원 59명 등 총 147명이 탑승했고, 탑승자는 23개국 국적자로 구성됐다.
환자들의 증상은 지난달 6일부터 28일 사이 나타났다. 초기에는 발열, 두통, 설사 등 감기나 장염과 비슷한 증상으로 시작됐지만, 일부 환자는 폐렴, 급성호흡곤란증후군, 쇼크로 빠르게 악화했다. 첫 사망자는 지난달 11일 선내에서 숨진 성인 남성이었고, 이 남성과 밀접 접촉한 여성도 세인트헬레나에서 하선한 뒤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로 이동하던 중 상태가 악화돼 사망했다. 또 다른 여성 승객도 폐렴 증세 이후 숨졌다.
유럽질병예방통제센터(ECDC)는 8일 기준 이번 사태와 관련해 확진 5명, 추정 2명, 의심 1명 등 총 8건을 집계했다. 사망자는 3명이다. ECDC는 선박이 스페인 카나리아제도 테네리페 그라나디야항으로 이동 중이며, 10일 도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감염경로 추적.. 승객들 어디로 이동했나
이번 사태가 국제적 우려로 번진 이유는 감염 사실이 공식화되기 전 일부 승객이 이미 여러 국가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WHO과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US CDC) 등에 따르면, 이번 아웃브레이크 사태가 공개되기 전 세인트헬레나 등에서 하선한 승객 약 30~40명이 미국, 영국, 싱가포르 등 최소 12개국으로 이동한 것으로 파악됐다.
현재 각국은 뒷늦게 하선 승객과 항공기 접촉자에 대한 추적 조사를 벌이고 있다. 미국 CDC는 MV 혼디우스호 관련 한타바이러스 사태를 적극 감시하고 있으며, 미국인 승객들을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의 오펏 공군기지로 의료 송환한 뒤 네브래스카대 국가격리센터로 이송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CDC는 현재 미국 일반 대중에 대한 위험은 “매우 낮다”고 평가했다.
스페인 당국도 9일(현지 시간) 선박을 항구에 직접 접안시키지 않고 인근 해상에 정박시킨 뒤, 승객들을 소형 선박으로 육지에 이동시킬 계획이다. 이후 보호장비를 착용한 인력이 운행하는 분리 버스로 공항 활주로까지 이동시키고, 각국 정부가 마련한 항공편을 통해 본국으로 송환하는 방식이 검토되고 있다. 미국과 영국은 자국민 송환을 위한 전세기 투입을 통해 감염병 확산을 사전에 차단키로 했다.
설치류 감염, 한타바이러스란
한타바이러스는 설치류를 숙주로 하는 바이러스군이다. 사람은 주로 감염된 쥐의 소변, 대변, 침에 오염된 먼지를 들이마시거나 오염된 표면을 만진 뒤 점막에 접촉할 때 감염된다. 사람이 감염되는 주요 경로를 설치류의 배설물·소변·침과의 접촉을 통해서다. 이번처럼 드물지만 설치류를 매개하지 않고 사람간 감염도 이뤄지는 보고가 나온 상태다.
한타바이러스 이름은 우리나라에서 출발했다. 지난 1976년 당시 이호왕 고려대 명예교수가 경기도 연천 한탄강 인근 등줄쥐에서 원인 바이러스를 세계 최초로 분리했고, 이후 한탄바이러스로 명명되면서 현재 이름이 유래됐다. 한타바이러스는 이후 신증후군출혈열을 일으키는 아시아형 바이러스와, 한타바이러스 폐증후군을 일으키는 미주형 바이러스 등으로 구분돼 연구돼왔다. 이 교수는 진단법과 예방백신 개발에도 기여한 한국 감염병 연구사의 상징적 인물로 평가된다.
다만 이번 크루즈선 사태의 원인은 한국에서 주로 알려진 한탄바이러스가 아니라 안데스 바이러스다. 안데스 바이러스는 남미, 특히 아르헨티나와 칠레 등에서 보고돼온 한타바이러스 계열로, 폐 증상을 중심으로 빠르게 악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성이 더 큰 것으로 알려져있다.
한타바이러스, 잠복기와 증상은
한타바이러스 폐증후군의 잠복기는 보통 2~4주로 알려져 있다. 다만 WHO에 따르면, 증상이 빠르면 노출 후 1주, 늦으면 8주 뒤에도 나타날 수 있다. 이 때문에 당장 증상이 없는 승객이라도 일정 기간 모니터링이 필요하며, 길게는 두 달 동안 추적조사가 필요한 상황이다.
초기 증상은 감기나 독감처럼 발열, 오한, 두통, 근육통, 어지러움, 구토,등이 나타날 수 있어 초기 대응이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이후 일부 환자에서는 폐렴, 호흡곤란, 저혈압, 쇼크가 빠르게 진행되는데, 이번 크루즈 사례에서도 발열과 위장관 증상 이후 폐렴, 급성호흡곤란증후군, 쇼크로 악화한 사례가 보고됐다.
문제는 병이 진행되는 속도다. 한타바이러스 폐증후군은 초기에는 단순 몸살처럼 보일 수 있지만, 폐에 급격히 문제가 생기면 산소 공급이 어려워지고 중환자실 치료가 필요해진다. WHO는 중증 환자에게 기계환기, 혈압 유지 치료, 체외막산소공급장치(ECMO), 신장 기능 저하 시 투석 등이 필요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한타바이러스, 백신과 치료제는
현재 전세계적으로 모든 한타바이러스에 통용되는 ‘만능 백신’은 없다. 한국에는 이호왕 교수 연구진의 성과를 바탕으로 개발된 한타박스(Hantavax)가 있으며, 주로 신증후군출혈열 예방 목적으로 사용돼왔다. 하지만 이번 크루즈선 사태의 원인인 안데스 바이러스나 미주 지역의 한타바이러스 폐증후군에 대해 미국·유럽에서 널리 승인된 백신은 없는 상황이 없으며, 실제로 감염자가 많지 않아 백신 경제성에도 뒤로 밀릴 수밖에 없다.
치료도 제한적이다. CDC는 한타바이러스 감염에 특효가 있는 특정 치료제는 없으며, 의심될 경우 즉시 응급의료와 중환자실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설명한다. 조기 집중치료가 중요한 이유는 급성 호흡부전으로 빠르게 악화할 수 있어서, 대증요법 치료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의료계 전문가들은 "치료의 핵심은 바이러스를 직접 없애는 약이 아니라, 환자가 급성기를 버틸 수 있도록 산소 공급, 인공호흡, 혈압 유지, 투석, 에크모 등으로 생명을 지탱하는 데 있다"며 "조기 발견과 빠른 병원 이송이 생존율을 좌우한다"고 설명했다.
WHO “공중보건 위험은 낮지만 추가 환자 가능성”
WHO는 이번 사건을 심각한 감염병 사고로 보면서도 일반 대중에 대한 위험은 낮다고 평가했다. 우리나라 질병관리청도 같은 입장이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은 7일 브리핑에서 “심각한 사건이지만 공중보건 위험은 낮지만, 긴 잠복기를 고려하면 추가 사례가 나올 수 있다"며 “우선순위는 환자 치료, 남은 승객의 안전과 존엄 보장, 추가 확산 방지”라고 강조했다.
이번 사태는 코로나19와는 성격이 다르다. 한타바이러스는 코로나19처럼 일상적 대화나 짧은 접촉으로 쉽게 확산하는 감염병은 아니다. 특히 안데스 바이러스의 사람 간 전파도 밀접하고 장시간의 접촉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국제사회가 긴장하는 이유는 크루즈선이라는 폐쇄 공간, 여러 국가로 흩어진 승객, 최대 8주에 이르는 잠복기, 높은 치명률이 겹쳤기 때문이다.
크루즈선 한타바이러스 감염의 교훈
아직 사태가 완전 마무리되지 않았지만, 코로나19 이후 구축된 국제 감염병 대응체계가 여전히 중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미 코로나 사태에서 경험했지만, 감염병은 국경과 시간을 초월한다. 배와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는 현대사회에서는 한 선박에서 발생한 감염병도 며칠 만에 여러 대륙으로 순식간에 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에서도 보여주듯 국제 공조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WHO, ECDC, CDC, 스페인·네덜란드·영국·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여러 국가가 승객 명단, 환자 정보, 검사 결과, 송환 계획을 공유하면서 추가확산을 막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강화된 국제보건규칙과 감염병 대응 경험이 작동한 결과다.
앞으로 필요하지만, 최대 8주에 이르는 잠복기를 고려하면 조기 진단과 장기 모니터링이 매우 중요하다. 한타바이러스는 잠복기가 길어 당장 증상이 없다고 안심하기 어렵다. 하선 승객과 항공기 접촉자를 일정 기간 추적하고, 발열·호흡기 증상이 나타나면 즉시 검사와 중환자 치료로 연결하지 않으면, 언제라도 다시 꼬리를 꼬리를 물면서 우리나라까지 상륙하지 않으란 법이 없다.
그렇다고 과도한 공포와 방심을 모두 피해야 한다. 이번 한타바이러스는 독감이나 감기와 달리, 감염률이 매우 낮다. 대신 다른 바이러스가 그렇듯 치명률이 높은 감염병인 만큼 접촉자 차단을 통해 대응이 중요하다.
질병관리청 관계자는 "이번 한타바이러스 사태는 전세계에 감염병이 사회와 경제, 이동과 일상을 얼마나 빠르게 흔들 수 있는지 보여주는 것"이라며서 "감염병은 언제든 예상치 못한 공간에서 다시 등장할 수 있는 만큼, 견고한 공중보건 체계유지가 중요하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