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재난안전뉴스 박광춘 기자 |
광주 도심에서 귀가하던 여고생이 일면식도 없는 20대 남성에게 흉기로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이른바 ‘묻지마 범죄’에 대한 사회적 불안이 다시 커지고 있다.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에 특별한 원한 관계가 없거나 범행 동기가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불특정 시민을 공격하는 범죄가 반복되면서, 단순한 강력범죄 대응을 넘어 ‘분노사회’에 대한 구조적 처방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8일 광산경찰서와 관련 기관에 따르면, 24세 남성 장모씨는 지난 5일 0시 11분쯤 광주 광산구 월계동 한 대학교 인근 보행로에서 귀가하던 고등학교 2학년 A양을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A양의 비명을 듣고 달려온 또 다른 고교생 B군도 흉기에 찔려 중상을 입었다. 장씨는 범행 당시 흉기를 미리 소지하고 있었고, 피해자를 차량으로 앞질러 간 뒤 기다렸다가 범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조사에서 그는 “자살을 고민하던 중 범행을 결심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건이 큰 충격을 주는 이유는 다른 '묻지마 범죄'에서도 나왔지만, 피해자가 평범한 일상 속에서 아무런 방어 기회 없이 범죄에 노출됐다는 점이다.
특히 장씨가 범행 이틀 전 다른 여성으로부터 스토킹 신고를 당했던 사실도 확인되면서, 사전 징후를 어떻게 포착하고 관리할 것인지가 새로운 쟁점으로 떠올랐다. 이른바 이상 징후가 발견된 것이다. 경찰은 이에 따라 해당 신고와 이번 살해 사건 사이의 연관성을 수사하고 있다.
그간 묻지마 범죄라는 표현은 대중적으로 널리 쓰이지만, 수사기관과 전문가들은 최근 ‘이상동기 범죄’라는 용어를 주로 사용한다.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직접적 관련성이 확인되지 않고, 범행 동기가 명확하지 않으며, 공격 대상이 불특정 다수이거나 우연히 마주친 시민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다만 이 표현 역시 범죄 원인을 개인의 ‘이상성’이나 정신질환 문제로만 몰아갈 수 있다는 비판이 있어, 개념을 더 정교하게 정립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회입법조사처는 2025년 보고서에서 현행 이상동기 범죄 분류 기준이 여전히 명확하지 않고, 정신질환자에 의한 범죄라는 오해를 낳을 수 있다며 개념 재정립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자칫 이런 묻지마 범죄가 한 개인의 일탈이 원인으로 프레임되면, 범죄 예방 및 대응을 위한 해법을 제대로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범죄는 그간 정부와 지자체의 노력에도 불구, 줄어들지 않고. 경찰청과 형사법정책연구원 등에 따르면, 이상동기 범죄는 2023년 46건, 2024년 42건, 2025년 39건으로 최근 3년간 매년 40건 안팎 발생했다.
유형별로는 살인·살인미수 혐의가 35.4%를 차지했다. 불특정 시민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언제 어디서든 발생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시민들이 체감하는 공포는 통계 수치보다 훨씬 큰 상황이다.
이미 과거 사례들이 이런 불안감을 가장 시키고 있다. 지난 2023년 서울 신림역 흉기난동 사건과 경기 성남 서현역 흉기난동 사건은 대표적인 이상동기 범죄로 꼽힌다.
2024년에는 서울 은평구 일본도 살인사건이 발생했고, 2025년에는 미아동 슈퍼마켓 살인사건 등 불특정 다수를 향한 강력범죄가 이어졌다. 법무부도 이 같은 사건들을 언급하며 이상동기 범죄 위험군 선별과 집중관리 필요성을 밝혔지만, 실제로 구체화된 해법은 나오지 않은 상태다.
물론, 정부 당국이 이를 쉽게 막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같은 묻지마 범죄는 일반 강력범죄와 달리 사전 예측이 쉽지 않다. 기존 강력범죄는 원한, 금전, 치정, 조직 갈등 등 일정한 원인과 동기가 존재하고, 사회관계망을 통해 수사와 예방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이상동기 범죄는 가해자의 내면에 누적된 좌절감, 고립감, 분노, 자기파괴 충동이 외부의 불특정 대상에게 갑작스럽게 분출되는 경우가 많다. 피해자는 가해자와 아무 관계가 없기 때문에 스스로 위험을 피하기 어렵다.
특히, 개인화된 문제로 치부할 경우, 사실상 해법을 찾기가 쉽지 않다. 많은 전문가들이 원인을 단순히 개인의 성격 결함이나 정신질환 문제로만 볼 수 없다고 지적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범행은 개인이 저질렀지만, 그 뒤에는 거대한 원인과 배경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경제적 양극화, 취업난, 가족·지역 공동체 해체, 온라인 혐오문화, 사회적 고립과 분노조절 장애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일 있다. 사회적 실패와 좌절을 개인이 감당하지 못할 때, 분노가 자기 자신에게 향하거나 타인에 대한 공격으로 폭발할 수 있다.
특히 고립된 생활을 하면서 정신건강 지원이나 주변의 개입을 받지 못한 경우, 위험 신호가 외부로 드러나지 않은 채 악화되다가 잘못된 분출구에서 폭발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박기수 한성대 교수(사회안전학과)는 "이상동기 범죄는 경찰인력을 더 배치한다고 해결될 것이아니며, 분노와 고립이 쌓이는 사회적 환경을 줄이고, 지역사회·보건·복지·치안 체계가 함께 개입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며 “범죄에 대한 강한 처벌도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범죄 이전 단계에서 고립된 사람을 발견하고 치유하는 사회적 케어와 통합”이라고 강조했다.
정부도 대책을 내놓고 있다. 법무부는 보호관찰 대상자 중 이상동기 범죄 위험군을 선별하고, 치료적 개입과 맞춤형 관리를 강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보호관찰 종료 뒤에도 관리가 필요한 고위험군은 경찰과 정보를 공유해 지역별 범죄예방 활동에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지난해 “이상동기범죄에 선제적으로 대응해 국민이 행복한 일상을 살아갈 수 있는 안전한 나라를 만드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경찰 역시 2023년 신림역·서현역 흉기난동 사건 이후 다중밀집장소 순찰, 기동대·특공대 배치, 흉기 소지 의심자에 대한 선별적 검문검색, 살인예고 글 게시자 검거 등 특별치안활동을 벌여왔다.
당시 경찰은 흉기난동 범죄 발생 시 총기와 테이저건 등 정당한 물리력을 사용해 제압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그러나 이러한 대응은 범행 직전 또는 범행 이후의 물리적 대응에 가깝다. 범죄자의 내면에서 누적되는 분노와 고립을 사전에 발견하는 데는 여전히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미시적 대책과 병행한 장기적으로 대책이 중요하다. 첫째, 치안 대책은 더 정교해져야 한다. 단순한 순찰 강화가 아니라 학교 주변, 지하철역, 공원, 유흥가, 심야 귀갓길 등 취약 시간·장소를 중심으로 데이터 기반 순찰을 강화해야 한다.
반복적인 폭력 전력, 스토킹 신고, 흉기 소지, 살인예고 글, 자해·타해 암시 등 위험 신호가 발견될 경우 경찰·지자체·정신건강복지센터가 즉시 정보를 공유하는 체계도 필요하다.
다른 하나는 정신건강 측면에서 개입이 필요하다. 정신질환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찍어서는 안 되지만, 치료가 필요한 사람이 방치돼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정부는 작년부터 정신건강검진 주기를 단축하고 조현병 등도 검진 질환군에 포함하는 방안을 추진해왔다. 또 행정입원, 외래치료지원제도, 퇴원환자 사례관리 등도 내실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지만, 중요한 것은 강제 관리가 아니라 조기 발견, 치료 접근성, 지속적 사례관리다.
마지막으로 사회적 고립을 줄이는 장기 대책이 필요하다. 이미 우리사회는 고령화, 이혼증가, 계층분화로 인해 고립에 노출된 인구집단이 너무나 많아지고 있다. 이상동기 범죄는 한 개인의 돌발 행동처럼 보이지만, 그 배경에는 사회적 단절과 만성적 분노가 자리 잡는 경우가 적지 않다.
청년 실업, 빈곤, 가족 해체, 온라인 혐오, 실패한 사람에 대한 조롱 문화가 누적되면 사회 전체의 분노 수위가 높아지고 있어서다.
때문에 이번 광주 여고생 살해 사건은 한 소녀의 생명을 앗아간 비극이자, 대한민국이 또 다시 마주한 경고음이다. 시민들이 느끼는 공포는 “나도 우연히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불안에서 비롯된다. 이 불안감은 우리 사회를 움추러들게 만드는 한편, 불신을 조장하고, 활동을 위축시킨다.
결국, 이 불안을 줄이려면 범죄 이후의 엄벌만으로는 부족하다. 위험한 분노가 폭력으로 번지기 전, 사회가 먼저 감지하고 개입하는 체계가 작동해야 한다. ‘묻지마 범죄’라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비극을 줄이기 위해, 미시적 대책도 필요하지만, 분노사회를 치유하는 종합대책이 시급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