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재난안전뉴스 최종걸 편집인 |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 회장이 미·중 갈등에 낀 한국 기업의 대응에 대해 “중국이란 큰 시장을 포기하면 우리에겐 회복력이 없다”고 했다.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 겸 에스케이(SK)그룹 회장은 지난 12일 대한상의가 주최한 제주 포럼의 기자간담회에서 세계 경제 블록화 현상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최대 교역 파트너인 중국 시장을 잃어버리면 이를 대체할 시장을 찾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중국 반도체 공장에 35조원을 투자한 SK그룹 회장이라 더 실감 나는 지적으로 느껴진다. 미국의 대중국 기술 통제로 삼성과 SK 중국 내 반도체 공장 설비의 업그레이드와 시설 보강마저 미국의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에서 막대한 돈을 들여 투자한 공장이 볼모로 잡히고, 거대 소비 시장이 막힐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로 들린다. 삼성전자는 낸드플래시의 40%, SK하이닉스는 D램 40%와 낸드 20%를 중국에서 생산하고 있다. 투자한 금액만 각각 33조원, 35조원에 이른다. 우리 전체 반도체 수출시장의 40%가 중국이다. SK하이닉스가 인텔에 70억달러를 주고 인수한 다롄 낸드플래시 공장의 경우 업그레이드 투자가 이뤄지지 않으면 경쟁력 차질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최 회장은 “세계 경제 블록화로 옛날 프리마켓(자유시장)에서 물건 팔리던 시대가 아니다. 앞으로는 하나의 공통된 시장이 아니라 쪼개져 있는 수많은 시장을 상대해야 한다.”면서 “미·중뿐 아니라 유럽, 일본 등 주요국 정부가 기업 경쟁력 자체에 개입하는 일이 생기고 있다. 이제는 밖에 나가서 저희(기업)만으로 이길 수 없는 상대들”이라고 진단했다. “국가와 기업이 경쟁력을 합쳐야 우리가 주도권을 잃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기업 경쟁력만으로 대응하기엔 어려운 게임의 규칙이 생기고 있다는 것이다. 국가가 기업 경쟁력에 개입하는 추세라 국가가 기업의 경쟁력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요구이다. 이념과 가치 동맹을 넘어 국가와 기업이 이익을 위해 이익동맹으로 재편되는 시장경쟁력을 찾아야 한다는 소리이다. 비단 최 회장만의 지적은 아닐 것이다. 삼성도 중국 반도체 공장에 33조원이나 투자해서 가동 중이고 한국의 수많은 기업이 중국과 종횡으로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이런 연결고리 영향으로 우리 전체 수출의 20% 규모를 중국이 차지하고 있다.
최 회장은 정부와 기업 결합 형태의 새로운 경쟁력 환경에 대한 정부의 역할에 대해서는 “미리 투자하고 움직이는 게 필요한데, 문제가 터진 뒤 그때 가서 문제를 해결하자는 사후약방문이 되는 경우가 있다”며 “내(정부)가 지원해 주면 되잖니 이런 접근으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니(기업)가 도와달라고 하면 지원해줄게 그런 얘기가 아니라 어떻게 하든지 목적이 달라도 붙어서 엄청나게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했다. 미·중 간 점증하는 기술 패권 충돌 사이에서 숨죽이고 있던 SK그룹 회장이자 기업들을 대표하는 대한상의 회장의 발언이라 기업들이 하고 싶어 하는 말을 대신했을 것이다. 이념과 가치를 넘어서 이익동맹이라는 시대변화가 시장의 분화로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은 정부 당국자들이 되새겨야 할 대목이다. 미국 등 경쟁국이 일방적으로 보호무역주의적 정책을 쏟아낼 때 기업들이 일방적으로 당하는 속수무책을 국가가 나서야 할 이유를 든 것이다. 국가가 나서서 기업의 경쟁력에 개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등 첨단기술 수출을 통제한 것도 결국 미국 기업의 경쟁력을 유지 강화하려는 이익동맹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중국은 세계 2위의 거대 시장이다.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서방선진 7개국(G7) 국가 중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6국을 다 합친 것보다 크다. 까마귀 날자 배가 떨어졌다는 오비이락 격으로 윤석열 정부 들어 한미일 가치 동맹에 몰두할 때 지난해 한국의 경제 규모가 세계 10위에서 13위로 밀렸다. 전쟁 중인 러시아 보다 밀렸다. 대중 수출이 급감하고 무역적자가 굳어지는 과정에서 벌어진 결과였다. 최대시장을 버리고 다른 시장에서 만회할 시장이 없다는 재계 총수의 지적을 정책 당국자들은 깊게 되새기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