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런데도 희망보다는 절망에 가까운 뉴스가 이어지고 있다. 미국을 국빈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26일 발표한 한미 정상회담의 공동성명을 보면 그렇다. 공동성명은 “양 정상은 동 법이 기업 활동에 있어 예측 가능성이 있는 여건을 조성함으로써 상호 호혜적인 미국 내 기업투자를 독려하도록 보장하기 위하여 긴밀한 협의를 계속해 나가기로 약속했다”고 밝혔다. 또 “국가안보를 보장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할 필요성을 인식하면서, 양국의 해외투자 심사·수출통제 당국 간 협력 심화의 중요성을 재확인했다”는 대목도 있다.
우리가 양 정상 간 공동성명에서 나타난 대목 중 미국 내 투자를 독려한다는 것과 해외투자 심사와 수출통제이다. 투자는 기업의 수익을 전제로 한 것이라 국가가 나서서 가타부타 간섭할 일이 아니다. 미국이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통해 미국 국내와 북미산 전기자동차 회사에만 보조금을 지급한 것도 모자라 반도체 법을 내놓고 보조금을 받는 기업에 대해 사실상 모든 것을 공유하자는 것까지 밀어붙이고 있는 판국에 이번에는 또 미국 국내 투자를 독려하자고 했다. 우리말로 ‘모’ 아니면 ‘도’라는 말이 있지만 미국이 미국 국내 투자, 아메리카 퍼스트, IRA, 반도체 법은 우리에겐 모가 아니라 도일 수 있다고 우려한다. 모 아니면 도의 미국식 표현인 올 와 나씽(All or Nothing)중 '나씽' 일 수 있다.
미국 국내 투자 독려는 윤 대통령이 미국 국빈 방문 중 미 의회에서 연설한 자유와도 배치되는 대목이다. 윤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에 앞서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는 중국이 미국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의 중국 내 칩 판매를 금지해 중국 시장에서 반도체 공급 부족 현상이 생기더라도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이 그 공백을 메우는 일이 없게 해 달라고 백악관이 한국 정부에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귀를 의심할 보도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중국 내 반도체 공장까지 가동하고 있고, 미국 인텔이 매각한 반도체 공장까지 떠안고 있는데 중국 내 반도체 공급을 추가하지 말라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국으로부터 투자만 강요받고 수출까지 통제받으라면 적자는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 미·중 무역전쟁과 기술 전쟁에 왜 한국과 한국 기업이 어부지리는커녕 제물이 돼야 하는지 그 제물을 자처하는 정상회담을 꼭 해야 할 이유가 있는지 의문을 던진다. 핵보다 더 무서운 건 굶주림이다. 핵은 최후의 수단일지 몰라도 굶주림은 눈앞의 현실이다. 우리 수출 주력이고 우리 미래 쌀인 반도체와 배터리 독소조항 하나 챙기지 못한 정상회담을 바라보는 걱정은 깊어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