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재난안전뉴스 최종걸 편집인 | 한미일 경제 안보 동맹이 우리만 무한 희생을 강요하는 들러리처럼 비친다. 한미일 경제 안보 동맹은 미·일이 원하는 대로 따르라는 것처럼 보인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나 반도체 지원법이 그렇다. 지난해 11월 13일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때 한미일 정상은 첨단기술, 공급망, 에너지 등 경제 안보 분야의 협력 강화를 위해 '한미일 경제 안보 대화'를 신설하기로 합의했지만, 전후로 벌어지는 상황은 미·일이 요구하는 대로 따르는 합의처럼 보인다. 당시 정상들은 성명에서 역내와 전 세계의 이익을 위해, 또 기술 리더십을 증진하고 보호하기 위해 연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돌아가는 모양새가 그 합의와 성명이 미래 기술 패권에 한국이 백기 투항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미·일이 동맹이라는 위장으로 쳐 놓은 덫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가 없다. 미국은 삼성과 SK그룹에 배터리와 반도체 공장 미국 건설을 줄기차게 요구해왔다. 도널드 트럼프에 이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까지 나서서 한국의 첨단 배터리와 반도체 기업에 감세와 보조금이라는 미끼까지 던져가며 투자유치에 나섰다. 미국은 반도체를 국가 안보로 규정하면서까지 반도체 공급망 패권 구상에 막대한 감세와 보조금을 수단으로 활용했다. 결과는 ‘미국산 부품을 일정 비율 이상 쓰도록 하는 바이 아메리카(buy America)였고, 미국내 우선이라는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 였다. 같은 전기차 배터리라도 한국에서 생산한 전기차는 미국 내 시장에서 보조금 혜택을 받을 수 없게 했다.
지난해 미국 의회가 기습적으로 통과시킨 IRA 때문이다. IRA에 이번엔 반도체 지원법을 들고나와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반도체 기업에 대한 구체적인 단서 조항을 내밀었다. 이 조항에는 기술 기밀 보고, 초과 이익 공유, 근로자들 유치원까지 지원하라는 둥 눈으로 봐도 이게 말이 되는 단서 조항인지를 의심할만한 내용으로 적지 않다. 보조금과 감세 혜택은 공장을 유치해서 자국과 지역민의 고용 창출 효과라는 고전적 전략으로 알고 있었지만 착각일 수 있다. 쥐꼬리만 한 보조금으로 한국이 보유한 세계적인 기술을 탈취하겠다는 법처럼 읽힌다.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 소장은 이를 두고 “삼성전자가 미국 내 반도체 공장에 170억 달러를 투자해 투자금의 5~15%의 보조금을 받는다면 1조1천억~3조3천억 원을 받는 것인데 이는 최근 3년간 연평균 41조 원의 이익을 내는 삼성전자 순이익의 2.6~8.0% 선이다. 쥐꼬리 보조금을 주면서 생산, 재무, 판매 모든 정보를 제공하라는 것이 본질인데, 문제는 보고된 정보가 미국의 경쟁 기업에 흘러가도 막을 방법이 없다는 데 있다.”라고 지적했다.
한국 대법원이 지난 2018년 10월 ‘일본기업의 강제 동원은 불법적 전쟁범죄이며 일본기업이 배상책임이 있다’라는 판결 이후 4년 4개월 만에 정부가 이를 뒤집는 해법을 내놨다. 우리나라(정부 산하 재단)가 우리 기업으로부터 돈을 걷어 일본 전범 기업 대신 판결금과 지연이자를 내겠다는 것이다. 정부 공식 입장은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로 나아가기 위한 결단”이라고 했다. 일본 정부는 당시 이를 빌미로 한국 정부가 그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반도체 핵심 소재를 한국에 수출 금지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일본 정부는 2019년 7월 반도체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제조에 필수 소재인 포토레지스트(PR)와 고순도 불화수소(에칭가스), 플루오린 폴리이미드(FPI) 등 3개 품목의 한국 수출에 대해 개별 수출 허가로 규제를 강화했다. 같은 해 8월에는 한국을 일본의 백색국가 명단(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했다. 그렇지만 삼성과 SK하이닉스는 일본의 이 같은 기습적인 조치를 뚫고 반도체 소재 확보 다원화에 나섰다. 궁해도 통했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한일관계 미래를 위한 결단에 자국법까지 뒤집었지만 일본은 추가로 한국 정부가 일본의 반도체 수출 소재 금지에 대한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를 취하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멀리 보고 가야 한다. 실리가 중요한 게 사실이지만, 이를 명분으로 대한민국이 제대로 가야 할 길에서 혹여 벗어나지는도 꼼꼼히 챙겨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