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기재부, 반도체 전쟁 '통 큰 세제지원안' 야당 설득해야

한국재난안전뉴스 최종걸 편집인 | 대한민국 곳간지기 기획재정부가 통 큰 결단을 내렸다. 반도체 전쟁을 벌이고 있는 국내 반도체산업에 통 큰 세제지원안을 내놨기 때문이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 실에서 반도체 등 세제지원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발표 내용에 따르면 정부가 반도체 시설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율을 대기업 기준 8%에서 15%로 두 배 이상 올리고, 투자 증가분에 10% 세액공제를 추가했기 때문에 사실상 25%로 3배 이상 확대한 셈이다. 중소기업 역시 공제율이 16%에서 25%로 확대했다. 중소기업의 시설 투자 추가 세액공제율을 포함하면 최대 35%까지 늘어난다. 지난해 12월 23일 국회 본회의에서 대기업의 반도체 세액공제율을 6%에서 8%로 올리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이 통과된 지 11일 만에 정부가 여야안보다 그 폭을 확대한 것이다.

 

당초 반도체산업 지원과 관련한 세액공제율안에 대해 국민의힘은 20%, 더불어민주당은 10%, 기재부가 세수가 감소한다며 야당안보다 낮은 8%를 제시한 상태에서 기재부안 8%가 지난 12월 23일 국회에서 통과됐다. 하지만 11일 만에 세액공제율은 '금 나와라 뚝딱'으로 돌변했다. 기재부가 여야안보다 한도율을 높여 정부의 공식안으로 발표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이 법안을 놓고 가장 걸림돌로 작용했던 기재부의 돌변은 이제야 세계 반도체 전쟁에 실감하는 모양새이다. 강 건너 불구경하다 불똥이 발등에 떨어진 듯하다. 유감스러운 것은 그 불똥은 윤석열 대통령의 한마디 였다는 점에서 씁쓸한 뒷만을 남긴다.

 

기재부는 반도체 산업지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업계의 읍소에도 “반도체 투자에 매우 높은 수준으로 세제지원 중”이라는 보도자료까지 내며 버텼다. 기존 6% 세액공제에서 8%로 확대한 것을 생색내는 분위기였다. 그러다가 12월 30일 윤석열 대통령이 “반도체 등 국가전략산업에 대한 세제지원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하자 상황이 바꿨다. 미국, 대만, 일본 그리고 중국이 반도체 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해 투자기업에게 최고 세율로 지원하고 있는 것을 뻔히 보면서도 가장 짠 세액공제율을 적용해왔다가 이번에 백기투항한 것이다. 대한민국 금고지기라는 자부심 넘치는 기재부의 체면이 대통령 말 한마디에 구겨졌지만 쓸데없는 체면치레는 잘 벗었다고 본다.

 

반도체 수출이 우리나라 전체 수출의 20%를 넘게 차지하고 있지만 주요 경쟁국들의 추격은 전 방위로 압박을 받고 있다. 기술 초격차 경쟁 뿐만아니라 지원도 거세다. 경쟁국들은 세제·예산·금융수단을 총 동원해 반도체 산업을 지원하고 있다. 미국은 세액공제비율 25%와 자국 내 시설 건립에 대한 520억 달러 보조금 지급 등을 담은 법안을 작년 7월 말 통과시켰다. 중국도 반도체 기업의 공정수준에 따라 법인세를 50∼100% 깎아주고 오는 2025년까지 1조위안(180조원 규모)을 지원한다. 대만은 세액공제율을 종전 15%에서 25%로 확대하는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고 일본·유럽연합(EU) 역시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붓고 있다. 이런 주변 경쟁국을 보고도 기재부는 모르쇠였다가 이번에 화들짝 놀란 모습으로 세제지원안에 나선 셈이다.

 

문제는 정부안을 국회가 동의하는 절차가 남았다. 기재부가 4개월 질질 끌다가 겨우 통과된 세제를 포함한 지원안을 이젠 거꾸로 거대 야당을 설득해야하는 '우픈' 상황이 됐다. 곡물의 자급자족은 못하지만 미래의 쌀인 반도체만큼은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우리 자산을 지키는 길이라는 점에서 기재부가 야당을 설득하는 데 체면 따윈 벗어던져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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