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늬'만 터널인 '방음터널'.. '안전'은 터널에 없었다

아파트 소음 민원 해결 위해 방음 커버 씌워 도시 통과
편의성 추구하다 대규모 화재와 사망 키워
안전시설 '비용' 아닌 '투자'로 인식돼야..총제적 정비필요

 

한국재난안전뉴스 이계홍 선임기자 | 29일 오후 경기도 과천 제2경인고속도로에서 발생한 화재로 5명의 목숨을 순식간에 앗아간 이른바 '방음터널' 사고는 인재(人災) 중의 인재로 요약되고 있다. 대형도로의 도심 관통을 위한 편의성과 경제성을 추구한 나머지, 일반 터널에서 갖춰야 할 안전 시스템이 없었던 탓에 대형 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29일 소방당국 등에 따르면, 이날 오후 터널에서 운행 중인 한 트럭에서 발생한 불이 방음터널을 덮고 있는 플라스틱 천장으로 삽시간에 번지면서 당시 터널 안 차량에 있던 탑승객 중 5명이 사망하고, 37명이 부상했다. 화재 예방을 고려해 플라스틱이 화재에 강한 것으로 만들어졌으나, 플라스틱 화재의 경우 열기가 워낙 강해 2,3분만에 800여m 길이의 절반 이상을 태워버렸다. 

 

이번 방음터널을 덮은 폴리카보네이트는 일반 플라스틱보다 열기에 강한 '방염' 소재이지만, 불연 소재는 아니기 때문에 고온의 열이 장시간 가해질 경우 불에 강하게 붙을 수밖에 없다. 더욱이 플라스틱류 소재는 불이 붙으면 나무에 비해 다섯 배가 넘는 열을 내뿜어 불이 더 빨리 번지고, 유독가스도 같이 발생하기 때문에 순식간에 인명피해가 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방음터널은 800여m 길이로, 과천 지식정보타운을 가로지르는 양방향 고속도로를 덮고 있는데, 지식정보타운의 중심 도로인 과천대로와 교차하는 구간은 고가교 형태로 이뤄져 있다. 방음터널 옆으로는 2024년 입주 예정인 아파트와 2025년 완공되는 오피스텔 등이 다수 자리 잡고 있어 주민들로부터 소음 및 분진 민원 해결을 위해 필수 아이템으로 설치됐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큰 도로의 경우, 소음과 문진 문제 해결을 위해 가장 빠른 '편법'으로 방음터널이 이번 사고 장소를 비롯해 이미 건축됐거나, 건설 중에 있는데, 문제는 일반 터널이 아니다보니 별다른 규제의무가 없다는 것이다.  예컨대, 옥내 소화전 등 소방설비를 설치하지 않아도 되고, 화재시 필요한 스프링클러도 없다. 환기 팬은 있지만, 일반 터널에 화재 시 발생하는 유독가스를 배출하는 원격제어 환기 팬과는 다르다. 또한 방음터널은 국토안전관리원 기준으로도 터널에 해당하지 않아 시설물 안전점검 및 정밀안전진단 대상에서도 빠진다.

 

때문에 일반 터널처럼 굴착 과정에 들어가는 엄청난 비용도 없을 뿐더러, 실제 터널이 아니기 때문에 이같은 '안전 투자'가 없어서,  지자체와 건설사 등이 모두 선호하는 '불안전 터널'로 우후죽순처럼 생기고 있다.  실제로 2025년을 목표로 조성 중인 인천 용현·학익 1블록 사업 시행사는 지난 3월 고속도로 소음 문제로 주민들과 갈등을 빚자 방음터널을 문제 해결용으로 제시했고, 기존 도심에서 아파트를 고가도로처럼 지나가는 구간 역시 방음터널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문제는 이번 사고에서 보듯이 무니만 터널일 뿐, 실제 터널이 아니어서 각종 안전시설이 사실 전무하고, 특히 일반 터널의 콘크리트 등 불연성 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더욱 화재 등에 취약하고, 화재 발생의 경우, 순식간에 터널 안에 유독 가스로 인한 질식 사고가 발생할 수 있어 안전 무방비 상태인 셈이다. 

 

박기수 한성대학교 사회안전학과 특임교수는 "기본적으로 이태원 참사 사고도 그렇지만, 우리나라 사회 구조에서 그간 편리성과 경제성이 우선시 됨에 따라, 안전에 필요한 규정과 시설에 대해서는 '비용'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높았다"며 "한 번에 이를 바꿀 수는 없지만, 국가 시스템 안에서 안전을 적극적으로 투자로 인식하고, 이런 투자가 장기적으로 국민 행복과 직결된다는 체계가 정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방음터널 화재로 인한 대형 재난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20년 8월 20일 수원시 영통구 하동 광교신도시에서 해오라기터널로 이어지는 하동IC 고가차로에서는 승용차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2020년 8월에도 수원 방면 4지하차도 방음터널에서는 운행 중이던 1톤 화물차에서 불이 나 터널 도로 면과 벽면, 천장 방음 패널 등이 훼손됐기도 해 방음터널 안전에 대한 총체적인 정비가 필요한 상황이다. 

관련기사

93건의 관련기사 더보기

기획·칼럼